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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제주읍 1949년 2월 2일: 강병선(20, 남) 등 5명이 피신생활 중 토벌대에 발각되어 지금 의 오라골프장 부근에서 총살됨 2월 12일: 고영애(22, 여) 등 5명은 오라리 동산교 부근에서 토벌대에 총 살됨 살아남은 오라리 주민들은 3년 후 마을을 둘러 성을 쌓으며 재건에 박차를 가 했다. 당시 오라리 성담은, ‘오라1리 동쪽 병문천 → 강구물 남쪽 100m → 흘내 (현 오라2동 감귤선과장) → 양진현 댁 남쪽 100m → 연미마을회관(현 마을회관) 남쪽 200m → 연동마을’까지 약 2㎞에 걸쳐 높이 3~4m, 하부 2m, 상부는 1m 가량으로 축성했다. 각 마을 남녀노소 모두 동원됐고, 매일 쉬지 않고 쌓아 3~4 개월 만에 완성했다. 성문은 북문(현 공설운동장 북쪽)과 동문(병문천 방향), 남문 (진밭 방향)이 있었고, 사평마을과 연미마을에는 남쪽으로 성문을 내어 사람들이 출입할 수 있게 했다. 성담은 그 후 1960년대까지도 남아 있었으나 점점 사라져 지금은 흔적이 없다. 한편 마을 재건 당시, 남세마을(7호), 고지레, 해산이, 어우눌, 구아랑, 선달벵듸 (7호) 등은 끝내 복구되지 못해 잃어버린 마을이 되었다. 4·3이 끝나갈 무렵, 들렁귀(오라동 304번지) 일대에 주둔소가 세워졌다. 이 주 둔소 축성에는 오라리 주민들이 총동원됐다. 현재 주둔소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오라동 4·3길이 2018년 7월 28일 개통됐다. 제주특별자치도가 동광, 의귀, 북 촌, 금악, 가시마을에 이어 여섯 번째로 개장한 제주4·3길이다. 이날 행사는 연미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해산이 가는 길과 선달벵듸 가는 길 두 개의 코스에서 치러 졌다. 연미마을은 이날 행사를 맞아 회관 울타리에 오라리(연미마을) 방화사건에 대한 표석을 세워 4·3에서 오라리 방화사건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오라리(연미마을) 방화사건 이곳 연미마을은 4·3사건 당시 이른바 “오라리 방화사건”이 발생한 역사의 현 장이다. 우익단체원의 가족이 무장대에 의해 희생되고 장례를 마친 1948년 5월 1일 우익청년단원들은 몇몇 사람들의 가옥 10여 채를 지목하여 방화하는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