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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한국전력기술인협회 50년사 그러나 이 전등설비의 도입계획은 뜻밖에도 1884년 12월 4일에 일어난 갑신정변으로 잠정적인 구매정지 조치가 취해짐으로써 차질을 빚게 되었다. 이 구매정지 조치가 있은 지 4개월이 경과하면서 국내 정국은 안정 되어 다시 전등설비를 구입하기로 하고 선금으로 2만 원을 미국 타운젠트(Towngent) 상회에 지불하였다. 제2절 전등교사 윌리엄 맥케이 1886년 12월 미국 에디슨 전기상사로부터 윌리엄 맥케이(William Mckay)와 또 한사람의 전기기술자가 선편으로 인천에 도착하여 육로를 통하여 곧바로 서 울에 들어와 전등가설공사를 착수하였다. 윌리암 맥케 이는 처음으로 국내에서 활동한 외국인 전기기술자로 서 당시 23세로 아내와 어린자녀를 두고 있었다. 1886년 12월 발전기 전기자재와 함께 인천에 온 맥 케이는 서울에 먼저 입경하여 발전기를 설치 할 장소 를 경복궁내에서 ① 발전용 냉각수의 취수가 용이한 곳 ② 공간이 넓어 발전기 설치에 적합한 곳 ③ 궐내의 중심부로 각 전각(殿閣)에 대한 배전(配電)이 유리한 곳을 찾은 결과 건청궁(乾淸宮 : 현 경복궁)내 향원지 (香遠池 : 연못) 북쪽의 취향교(醉香橋 : 이 다리는 뒤 에 현 위치로 이전됨)와 우물 사이가 가장 적합한 곳 으로 판단하여 그 위치가 결정되어 발전기를 설치하 게 된 것이다. 이곳에 설치된 발전설비는 증기발전기 3㎾ 직류 2대 로써 건청궁 정원에 100촉광의 아크 등 2개를 가설하 고 1887년 3월 6일 발전기를 시운전하여 전력공급으 로 아크등 2개의 전등불이 드디어 점등되어 이 땅에 처음으로 전깃불을 비치게 되었다(신청일기). 고종과 왕비 침전인 건청궁에 대하여는 1887년 3월 9일 이전 에 이미 전기가 공급되었다. 발전기의 설치공사기간은 약 2개월 정도이고 전체공사기간은 약 4개월이었던 것 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맥케이는 신변보호용으로 언제나 권총을 휴대 하고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발전기를 가동한지 3일째 인 1887년 3월 8일 한국인 기수(旗手)가 그 권총을 만지다 우발적인 오발로 맥케이는 총상을 입었고 다 음날 아침에 숨졌다. 맥케이는 23세 어린나이로 조선 에 들어와 약 3개월 동안 짧은 기간에 발전기설치로 전등불을 밝히고 이 땅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죽기 전에 “ 그 조선인 기수가 고의적으로 나를 쏜 것이 아니므로 처벌받아서는 아니된다. ” 라는 뜻을 강력히 표시하였고 맥케이의 미망인과 주한미국공사 ◀ 건청궁 향원정과 한국의 전기발상지 기념비표식 본문1편 _ 132185(ok).indd 138 2014-01-24 오후 6:2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