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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서귀면 파견하였다. 이들은 마을청년 15명과 함께 마을 사람들이 이중으로 쌓은 성담을 함께 지켰다. 1967년 4월 4일에 신효지서를 효돈지서로 개칭했다. 1969년 6월 24일에는 하효리 134번지에 파출소 건물을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1971년에는 효돈지서를 효돈 파출소로 개칭하였다. 2003년 8월에 치안센터로 되었다가 2010년에 다시 효돈 파출 소로 되었다.”4 다. 현황 신효지서는 효돈초등학교 교문의 동쪽, 지금의 학교 울타리 안쪽에 있었다. 신 효지서 옛터 모두가 학교로 편입돼 당시 기와집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3) 비석 - 오용국 추모비 가. 소재지 서귀포시 신효동 1192-3번지 (현 월라사 북쪽) 나. 개요 오용국 추모비는 신효마을 주민들이 건립했다. 주민들은 오용국이 말도 잘하고 인물도 좋았다고 기억한다. 한 주민이 그를 기억했다. “5·10선거에서 오용국은 강성건과 경쟁했다. 오용국은 서귀면장을 지냈고, 말을 잘 해 인기가 있었다. 심금을 울리는 말을 잘했다. 강성건은 방위대장을 했는데 저승차사 라 불렸다. 오용국은 얼굴도 미남이고 인품도 좋았다. 일본에서 법학을 전공하였고, 회 계를 담당했다. 오용국의 큰아들 오○순은 교장으로 퇴임해 신효동에 살고 있다.” 『위키백과』는 오용국(吳龍國, 서귀포시 신효동 출신, 1904년~?)을, “대한민국 의 정치인. 동경대 법과 졸업. 1904년 전라남도 대정군 우면 신효동(현 제주특별 4) 서귀포시 하효마을회, 『하효지』, 2010, 460~4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