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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개관 137 지식을 체계적으로 소개한 한역 과학서가 바로 “ 박물 신편 ” 이며, 영국인 의사 홉슨(Hobson, 1810-1873)이 저술한 것으로 1854년 상해에서 발행되었다. 그 내용으로는 지기론, 열론, 수질론, 광론, 전기론, 천체, 지구, 조수약론 등으로 편집되어 있다. 전기론에 서는 전기의 음양작용과 전기분해, 동판제작과 자석 및 나침반 등의 원리를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최한기가 1866년에 서술한 “ 신기천험 ” 은 1860년대 초에 국내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며 우리나 라 일본 중국 등 과학지식을 전하는데 매우 큰 영향 을 주게 되었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전기지식을 널 리 보급하는 계기가 되었다. 1881년 일본의 새로운 문명을 시찰하고 작성된 일 동록에서는 발전지법과 전신지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 당시 일본이 역점사업으로 벌이고 있는 철도 광산 전등사업 등을 공무성에서 관장하고 있던 여러 가지 현대적인 시설을 광범위하게 기록하고 있다. 3. 전등 도입 과정 조선 정부는 1876년 한・일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한 데 이어 1882년 5월 22일 제물포에서 한・미수호통상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구미열강 중에서는 최초로 미국 과 국교를 수립하게 되었다. 그 결과 푸트(Foote) 초대 주한 미국대사가 1883년 5월 13일 조선에 부임했다. 조선에서는 같은 해 8월 민영익(閔泳翊) 전권대신, 홍영식(洪英植) 부대신, 서광범(徐光範) 종사관 등 일 행 11명으로 된 답례사 겸 군주특파협변교섭통상사 절단(약칭 “ 보빙사 ” )을 미국에 파견하였다. 보 빙사(報 聘使) 일행은 일본을 거쳐 1883년 9월 8일 샌프란시 스코에 도착한 다음 18일에는 뉴욕에서 아더(Arther, 21代)대통령에게 국서설치를 제청하였다. 그들은 뉴 욕에서 외교활동과 함께 주요기관과 산업시설을 시 찰하였다. 보빙사의 이러한 미국파견은 한・미과학기술교류의 발단이 되었고 동시에 우리나라가 전기문명(電氣文 明)을 최초로 미국에서 도입하게 된 계기를 마련하였 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 일행은 미국을 시 찰하는 동안 당시 실용화된 지 얼마 안 된 전등(電燈) 시설과 그 시설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놀라움과 함께 우리도 이용하기를 희망하였다. 보빙사가 뉴욕에 체류하고 있는 동안 중국의 상하 이(上海)와 일본의 요코하마(橫濱)에 상사를 개설하 고 동양무역에 종사하고 있던 프레이저(Frazer)의 도 움을 많이 받았다. 민영익은 귀국에 앞서 본 국정부에 연락하여 1884 년 1월 17일 프레이저를 뉴욕주재 한국명예총영사로 임 명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전등설비 도입교섭을 담당하 게 하였다. 그는 1884년 4월 16일 푸트공사에게 에디슨 (Edison)의 전등 및 전화의 독점권 신청제의를 전문(電 文)으로 알리고 우리나라 정부와의 교섭을 요청하였다. 민영익 전권대신 일행이 귀국한지 3개월 만인 1884년 9월 4일 마침내 우리나라 정부에서 에디슨 전기상사에 전등설비의 도입을 발주하였다. 푸트공사는 이와 같은 사실을 같은 날짜로 프렐링휘젠(Frelinghuysen) 미 국 무장관에게 보고하였다. 본문1편 _ 132185(ok).indd 137 2014-01-24 오후 6:2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