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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나. 개요 신효마을지에 4·3성담을 쌓는 과정이 자세히 기술돼 있다. 이곳 성은 신효지서 가 설립된 이후인 1949년 1월에 쌓기 시작했다. 당시 마을 구장은 강기춘이었다. “4·3사건의 사태수습을 위하여 축성하느라 울타리담 발담을 이용한 탓으로 도적의 방지, 우마의 방비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였으며, 잡인의 출입도 막을 길이 없어 음양 으로 향민의 피해가 많았다. 외성이 주위 10m 사이에는 가시덤불과 죽살 등을 이용하 여 장애물을 가설하였기 때문에 상당면적의 농토가 황폐하였으며 또한 1948년 이전 작물은 신효리 실경지의 1/3도 못하였으며 향민의 식생활의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였 다. 1953년 해성(解城)이 되자, 성변(城邊)의 토지소유자 축담을 이용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4·3사건의 결과 산간마을인 서상효, 동상효는 대부분 신효에 소개되어 이사 하여 와서 ‘밖그레’에 나그네살이를 하게 되어 생활에 불편을 느끼곤 했다. 방목하던 우 마도 4·3사건을 기해서 그 자취가 사라지고 심지어는 목초를 거둬들이거나 조상의 산 소에 벌초함에도 경찰의 파수(把守)를 서야했다. 일주도로 양측 500m 이내에 수목은 모두 벌채되었으며 화목용으로 월라산의 송림은 전부 벌채되었다. 그 광경은 마치 중 대가리인양 허전하기 짝이 없게 되었다.”3 신효리 4·3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