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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5월13일 4훨혁명의 불길이 통일운동으로승화되어가던 시절이 운동장을 꽉 메운 청중 한 청년을 따라 하늘을 뒤흔드는 구호를 외쳤다.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이 땅이 뉘 땅인데 오도가도 못하는고 당시 25세의 청년으로 통일운동을 이끄렀던 이수병 . 그는 이땅의 민주화운동은 반드시 통일 운동으로 발전하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일찍 내다본 선구자였다. 36년 부친 이정항과 모친 함정분 사이에 서 태어난 선생은 54년 부산사범학교에 진학해 사회과학연구회 암장을 조직 이론적 기조를 다졌으며 잠시 교편을 잡다 59년 경희대에 편입했다. 이듬해 4월 진주하는 탱크에 몸을 던지며 투쟁하던 선생은 이승만 독재정권이 쫓겨난후 교내에 민족통일연구회를 조직하고 전국적인 통일운동을 펼쳐나갔다. 선생은 당시 민족일보에 삼백대일의 경쟁을 뚫고 수석합격하기도 했다. 순회강연을 하던 선생은 5.16구데타 직후 체 포되어 학생으로는 유일하게 무기징역을 구형받고 복역하다 68년 4월 17일 석방되어 다음해 이정숙 여 사와 결혼 슬하에 동우 동주 은아를 두었다. 번혁운동을 이끌 핵심 조직 건설에 박차를 가하던 선생은 74년 민청학련 상부조직으로 지목된 이른바 인혁당재건위 사건에 연루 모진 고문에 75년 4월 9일 서대문구 치소 형장에서 운명하였다. 선생을 비롯한 여덟명의 선각자를 살해한 폭거는 ........ 바 국제법학자협회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했다. 그러나 유신독재후 선생의 위대한 음모를 짓 밟지 못했다. 그날 새벽 동료들의 단잠을 지키기 위해 깨금발로 형장을 향했던 고귀한 인간애는 오늘 자주민 주통일의 찬란한 불길로 타오르고 있다. 선생이시여 조국하늘에 마침내 통일의 깃발이 펄럭이는그날 첫 새벽의 여명으로 부활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