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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식(1881~1950) 본관은 청풍, 호는 우사로 경상남도 동래에서 태어났다. 미국인 선교사 언더우드와의 인연으로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귀국후 조국의 국권이 피탈되자 상해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몸담았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의 민족대표로 파견되어 열강들에게 조국의 독립을 호소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국무위원과 부주석을 지냈다. 해방 후에는 남북이 각각 단독정부를 수립하려하자, 김구와 함께 이를 막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즉각 북한 당국에 연행되어 성북동 성남호텔에 연금된 채 북한의 선전선동사업에 동원되었고, 납북 직후 건강 악화로 1950년 12월 만포 부근에서 서거했다. 한국 정부에서는 선생에게 198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