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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하천변의 검은소를 이용해 식수를 해결했다. 허재윤, 이윤화, 박남석, 송덕윤, 우 신석, 이춘명, 송두호, 이찬국 등이 거주했다. 1947년 3월 1일, 제28주년 3·1절 기념대회가 있던 날, 이 마을 주민 송덕윤이 관덕정 앞에서 경찰의 발포로 희생됐다. 이날의 발포사건은 4·3의 도화선이 되어 다음해 무장봉기가 발발하는 주원인이 된다. 1949년 1월 3일 마을이 초토화된 이후 주민 중 부재숙과 정지윤을 비롯한 6명은 주정공장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며 칠 후인 1월 8일 도령마루에서 총살됐다. 또 이윤우는 토벌대의 죽성주둔소에 끌 려가 학살됐다. 다. 현황 당시 집터는 거의 밭으로 변했으나 올레, 집터, 대나무들이 남아 있어 옛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웃동네 옛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