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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 칼럼 • 6·25전쟁과 유엔 안보리 결의안 82·83·84호 13 냉전체제와 6·25전쟁: 미국 트루먼 행정부의 전략적 대응 1950년 6월 24일 토요일 오후 3시, 미 국무장관 딘 애치슨(Dean G. Acheson)은 메릴랜드주 해어 우드 농장에서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전쟁 발발 약 7시간 후, 주한 미국 대사 존 무초(John J. Muccio) 로부터 북한군의 남침을 알리는 급보가 전신을 통 해 미 국무부에 도착했고, 곧바로 애치슨에게 전달 되었다. 애치슨은 즉시 핵심 참모들을 소집하고, 당 시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에 머물고 있던 해리 트루먼 (Harry S. Truman) 대통령에게 상황을 긴급 보고했 다. 트루먼 행정부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지역분쟁 이 아닌, 소련이 배후에 있는 조직적인 무력 침략으 로 판단했다. 트루먼은 북한의 침략을 1930년대 일 본의 ‘만주사변’과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에 비견하며, 이러한 침략을 방치하면 제3차 세계대전 으로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1948년 유엔 결의에 따라 한반도에 수립된 대한민 국 정부를 보호하고, 유엔을 통해 대응하겠다는 정 책 기조를 수립했다. 트루먼 행정부의 신속한 참전 결정은 김일성과 스탈린이 구상한 속전속결의 전쟁 시나리오를 무산시켰다. 또한, 유엔 한국위원단의 지속적인 현지 보고, 맥아더의 지상군 파병 요청, 유 엔 사무총장 트리그브 리(Trygve Lie)의 긴밀한 협조 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을 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자 상황 및 조치 한국 미국 ※ 미국 동부 시각(EST) 기준, 한국시간은 ( )로 표기 6.25. (일) 6.24. (토) 오후3시(새벽4시) : 전쟁 발발 오후9시4분(오전10시4분) : UPI통신 보도 오후9시26분(오전10시26분) : 무초 대사 1차 전신 보고 「925호」 오후늦은시간 : 애치슨 측근 및 국무부긴급소집회의 오후10시경(오전11시경) : 애치슨이 트루먼에게 보고 오후11시30분(오전12시30분) : 국무부 유엔 차관보 히커슨(John D. Hickerson)이 전화로 리 유엔사무총장에 게 안보리 소집 요구 의사통고 오후11시47분(오전12시47분) : 무초 대사 2차 전신 보고 「926호」 6.26. (월) 6.25. (일) 새벽2시30분(오후3시30분) : 미국 유엔대표부 안보리 소집요구서와 결의안을 전화로 보냄 새벽3시경(오후4시경) : 미국 유엔대표부 대표 대행 그로스(Ernest A. Gross)가 리 사무총장에게 전화로낭독하고 그날 아침 문서로 제출 오전8시40분경(오후9시40분경) : 육군부와 맥아더 사령부 간의 원격회의 오전10시(오후11시) : 백악관 참모 회의 오전11시20분(오전12시20분) : 트루먼 대통령에 보고 오후2시(새벽3시) : 유엔 안보리 특별회의 소집 오후6시(오전7시) : 유엔 안보리 결의안 82호 채택 오후7시45분(오전8시45분) : 국가안보 고위인사들 소집, 블레어하우스에서 긴급 전략회의(제1차 블레어하우스(Blair House) 회의) <표> 미국 트루먼 행정부의 유엔 안보리 소집 과정(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