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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 ]
3월 1일 : 제주3·1절 발포 사건(경찰 발포로 6명 사망) 좌우익 충돌
5월 21일 :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 개최(7월 중순 사실상 결별)
6월 1일 : 영암군경 충돌사건
[ 1948 ]
4월 3일 : 제주4·3사건 발생
5월 4일 : 제14연대 창설(제4연대 1개 대대 병력), 초대 연대장 이영순 소령 부임
5월 10일 : 남한만의 단독선거 실시(제헌 국회의원 198명 선출)
7월 17일 : 대한민국 헌법 및 정부조직법 공포
8월 15일 : 대한민국 정부 수립
[ 1949 ]
10월 5일 : 제4대 연대장 박승훈 중령 부임
10월 11일 : 제주도경비사령부 설치 (사령관 김상겸 대령)
10월 19일 20시경 : 제14연대 군인 봉기, 제14대 봉기 당시 장교 21명 희생
▶ 제14연대 봉기 당시 장교 21명 희생
10월 20일 05시경 : 봉기군 여수읍내로 진입해 중요기관장약
10월 20일 08시경 : 봉기군 여수역에서 6량의 열차 및 차량을 이용해 순천으로 출발
10월 20일 09시30분경 : 봉기군 순천 도착
10월 20일 오전 : 여수보안서 및 인민위원회 구성 후 경찰. 우익연사, 우익청년단, 지주 등을 색출
▶ 제주도출동거부병사위원회 명의로 성명서 게시
순천 장대다리에서 봉기군과 경찰 사이에 전투가 벌어져 경찰이 패퇴
10월 20일 오후
봉기군 순천 점령 후 좌익학생과 노동자에 무기 지급하고 경찰, 친일인사, 우익요원 등 색출
▶ 여수 : 인민대회를 개최하고 이용기, 박채영, 김귀영, 문성휘, 유목윤 5명을 인민위원회 의장으로 선출, 6개 항의 결정서 채택
▶ 광양 : 광양경찰서에 잡혀있던 민간인 27명 반송쟁이에서 경찰에 의해 희생
▶ 봉기군 광양읍내 장악
10월 21일 오후 : 봉기군 외곽지역으로 퇴각
▶ 반군토벌전투사령부(사령관 송호성) 광주 설치, 7개 연대 10개 대대 병력
▶ 봉기군 벌교, 낙안, 보성, 고흥읍 장악, 좌익세력 구례읍 장악
10월 21일 저녁 : 고인수 여수경찰서장 등 총살
10월 22일 오전 : 여수, 순천지구에 계엄 선포
10월 22일 저녁 : 봉기군 외곽지역으로 퇴각(지리산, 백운산, 조계산으로 입산)
10월 23일 : 진압군 순천 탈환
해군 박격포와 함께 제5연대 1차 여수 상륙 시도
10월 23일 오후 : 우익인사 김영준, 차황언, 연창희 등 총살
10월 24일 : 진압군이 인구부전투에서 봉기군과 시민군에게 큰 피해를 당하고 패퇴
10월 25일 : 진압군 미평에서 대규모 여수탈환작전 준비
10월 26일 : 진압군의 무차별 포사격 개시, 여수읍내에는 소수 좌익과 학생들이 남아 있었음
▶ 진압군 광양 탈환
10월 27일 : 진압군 여수 완전 진압
10월 28일 : 제14연대 해산
11월 20일 :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등과
12월 1일 : 국가보안법 제정(법률 제10호), 임시우편물 단속법 제정
[ 1950 ]
1월 13일 : 만성리 형제묘 집단희생
4월 20일 : 국민보도연맹 창설(6월 5일 결성)
6월 25일 : 한국전쟁 발발
6월 28일~8월초 : 국민보도연맹원 희생, 형무소 재소자 회생
10월 25일 : 전라남도에서 여순사건 사망자 11,131명 발표
11월 24일 : 계엄법 제정(법률 제69호)
[ 1953 ]
7월 27일 : 정전협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