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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5 후기 다. 이 일은 2003~2004년의 제1차 조사 때 대두됐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체 계적인 분류작업을 거친 유적명칭이 정립되기 이전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2003 년 조사 때 첫 작업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이 4·3유적의 분류작업이었 습니다. 그래서 당시 탄생한 유적명칭들로 해서 우스갯거리도 여럿 생겨났습니 다. 2004년 당시에도 쓰기를 강요받았던 학살, 피학살자, 학살터 대신 희생, 희생 자, 희생터 표현, 초토화작전이란 단어도 빼라. 1990년대 중반 이후에도 4·3과 관련해 도청에 회의를 가면 보수쪽에서는 4·3위령제의 ‘위령’이라는 말조차 써서 는 안 된다고 했는데 이와 비슷한 주장들이 끝없이 이어졌던 것입니다. 잃어버린 마을, 수장이 대체 무슨 말이냐? 성? 제주도에는 전통시대에 조성된 성들이 많다. 그런 제주성이나 명월성, 성읍성과 같은 전통시대의 성과 구분해야 한다. 그럼 4·3을 넣고 ‘4·3성’으로 하자. 당시 불만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와 진보쪽에서도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잃어버린 마을? 토벌대가 초토화작전을 시행해 강제로 마 을을 불지르고 주민들을 학살했지 어떻게 마을을 그냥 잃어버린 것이냐? 수장? 누가 바다에 장례식이라도 치렀느냐? 토벌대가 주민들을 학살해 바다에 버린 것 이 수장이지. 그러니 이건 ‘수장학살’로 바꿔 부르라. 이렇게 해서 탄생한 수장학 살이라는 표현은 참 그럴 듯합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마을은 오늘도, 잃어버린 마 을입니다. 이런 와중에 4·3유적하면 지금도 잊지 못하는 제 개인적인 기억이 몇 가지 있습 니다. 첫 번째는 1990년대 초 어느 때 일입니다.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이 4·3 순례를 오셨습니다. 45명 신부님들이 모슬포지역을 순례하고 큰넓궤에 들어갔습 니다. 큰넓궤는 2013년 상영돼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었던 오멸 감독의 4·3영화 ‘지슬’의 무대가 됐던 안덕면 동광리의 4·3 시기 주민들 피난처입니다. 잘 아시다 시피 이 굴은 들어가 순례하기에는 무척 힘이 듭니다. 깜깜한 암흑 속에서 손전등 이나 촛불에 의지해 벼랑을 내려가야 하고, 사방이 뾰쭉한 암반 사이를 한참 기어 들어가기도 해야 하는 난코스입니다. 이런 동굴 속을 신부님들과 같이 들어갔습 니다. 마침내, 굴 안쪽 2층굴 앞에 이르자 신부님들은 땀을 닦으며 미사를 준비했 습니다. 그리고 촛불 하나만 켠 채 20분 넘게 미사를 지냈습니다. 천주교 신자도 아닌 제가 보기에는 참 묘한 광경이었고, 그 후 제 머릿속에 남아 잊지 못하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