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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30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 4·3유적과 관련해 에피소드도 많이 생겨났습니다만 먼저 그간 고생한 분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아무런 대가없이 시 간나는 대로 조사하고 정리해 현장을 알렸던 4·3연구소의 초기 식구들 양성자, 강태권, 김동만, 김기삼, 홍만기, 강은숙, 김창후는 4·3유적의 밑돌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조사를 근간으로 처음 탄생한 것이 ‘4·3유적지 혹은 4·3사적지 순례’ 행사 입니다. 이제야 기행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얼마 전까지도 4·3유적을 답사할 때에는 종교성지를 순례하는 심정으로 엄숙하게 임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마음가 짐들이 있어서 행사 이름도 무슨무슨 순례였습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순례지 는 원동마을과 동광리, 섯알오름 학살터와 백조일손지지, 북촌리와 정비 전의 낙 선동 4·3성, 다랑쉬굴, 터진목 같은 지금도 꽤 알려진 4·3유적들이었습니다. 그뿐 만이 아닙니다. 1990년대 초반에는 막 시작한 4·3운동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진 보적 문학동인지나 학술단체에서 전국행사로 ‘4·3학술 공동기행(실천문학사, 1991)’이나 ‘제주4·3항쟁 학술기행(역사문제연구소, 1994)’을 4·3연구소와 공동 으로 개최했습니다. 그리고 이즈음 한 해에 한두 번씩 4·3연구소가 자체적으로 열었던 4·3유적지순례. 이 행사만도 1992년에 제6회째를 열었습니다. 이 모든 게 4·3유적과의 친교의 시간의 시작이었던 것이지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만 당 시 순례는 지금과 아주 달랐습니다. 보통 1박2일이나 2박3일 행사를 하면서 낮에 는 현장을 순례하고 밤에는 주제발표에 이은 참가자 공동토론으로 까맣게 밤을 새우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만큼 4·3과 4·3유적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이 대 단했던 것이지요. 그러니 요즘 아침에 갔다 오후에 돌아오는 4·3기행과는 아주 다를 수밖에요. 전국행사에는 말 그대로 전국 여기저기서 많은 순례자들이 모였 습니다. 행사 마지막으로 가진 간담회에서 참가자들은, ‘4·3과 교육의 관계를 고 민하며 교육현장에 임하겠다’, ‘4·3을 신학적인 면에서 접근해보고 싶다’, ‘책으로 만 읽은 4·3을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 제주에 왔으나 지금은 오히려 혼란스럽다’ 하고, 다양한 맺음말을 남겼습니다. 또 한 가지, 어느 전국행사에는 안기부에서 참여한 분도 있었다는 후문이 있었지요. 그만큼 당시에는 제주도만이 아닌 전국 에서 4·3에 대한 소식에 목이 말랐던 것 같습니다. 또 4·3유적과 관련해서는 꼭 말씀드려야 할 사안으로 용어사용 문제가 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