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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기관들이 여럿 들어서 있다. 4·3으로 잃어버린 마을이 되었던 알동네와 못동네, 섯동네는 택지개발로 주택가·상가지역으로 변했다. 현재 웃동네만이 잃어버린 마 을로 남아 과수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다음은 도남리의 주요사건이다. 1947년 3월 1일: 김태진(40, 남)과 송덕윤(49, 남)이 3·1기념대회 후 가두시위를 구경하던 중 경찰이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사망함 (삼도리-역 사현장-관덕정 및 관덕정 앞 광장, 참조) 1948년 9월 30일: 김상혁(63, 남, 전 구장)과 정익조(40, 남)·정병택(20, 남, 대동 청년단장) 부자는 군인으로 위장한 무장대에 끌려가 총살됨 11월 11일: 고연방(16, 남)과 김유생(59, 남), 진수백(30, 남), 허석봉(42, 남), 김기찬(20, 남) 5명은 보초를 서다 무장대의 습격을 받고 김기찬을 제외한 4명은 납치돼 죽거나 행방불명됨 1949년 1월 24일: 김여하(20, 남)는 집에서 무장대 습격을 받고 도립병원에서 치 료받다 사망함. 그의 부친 김양선(69, 남, 이명 김임학)은 1월 30일 아들의 행방을 묻는 군인에게 사투리로 “우잇(위에) 사람” 에게 희생됐다 답했는데, “우익 사람”으로 잘못 알아들은 군인 들에게 총살됨 1월 8일: 김봉호(48, 남) 등 12명은 오등리와 아라리 주민들과 같이 용담 리 도령마루로 끌려가 학살됨 (용담리-학살터-도령마루, 참조) 정부에서 인정한 도남리 4·3희생자는 39명(남성 37명, 여성 2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