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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1 한경면 이후 교장으로 양두옥이 부임했으며, 교원으로는 고태화가 있었다. 그러던 1948년 12월 5일 소개령이 내려지자 학교 운영은 중단됐다. 당시 완공되지 않았 던 교사는 해체돼 고산리로 소개한 청수리 주민들을 위한 가건물 주택용으로 사 용됐다. 청수국민학교에서 실제로 수업이 진행된 것은 2년 정도였다. 다음해인 1949년 5월 마을이 복구됐다. 교사가 없었던 청수국민학교는 사정이 비슷했던 저지국민학교와 통합하여 재건립하기로 합의했다. 저청국민학교는 1950년 5월 25일 설립 인가를 받고, 같은 해 6월 1일 현 저청초등학교 자리에 개 교했다. 초대 교장은 오창용이었다. 한편 청수2구였던 산양리는 1956년 7월 8일, 청수리에서 분리됐다. 산양리 주 민들은 1958년 4월 6일 산양국민학교 설립 인가를 받고, 같은 해 5월 19일 공회 당을 임시 교사로 하여 학교를 건립했다. 이후 교사는 산양리 연화동(제주시 한경 면 중산간서로 3181)에 신축됐다. 현재 산양초등학교는 폐교됐다. 청수국민학교는 1948년 5월 30일, 토벌대 학살사건의 현장이다. 이날 응원경 찰은 청수리를 기습해 주민들을 운동장에 집합시켰다. 그리고 주민들에게 무자비 한 폭력을 행사한 뒤 김한조(56, 남)·김경봉(38, 남)·김창권(30, 남) 부자 3명과 박 두화(33, 남) 등 4명을 청수리 헛개물로 끌고가 학살했다. 이날 응원경찰이 이들 청수국민학교 옛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