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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7 한경면 10. 청수리·산양리 청수리는 4·3 시기 1구와 2구로 나뉘어져 있었다. 1구에는 본동과 신연동, 정 인동(평화동)이 있었고, 2구인 산양리에는 수룡동과 연화동, 월광동, 자료동, 다 리왓동이 속해 있었다. 그러나 청수1구와 2구는 거리가 멀어 사실상 다른 마을이 나 다름없었다. 1956년 7월 8일, 한경면이 한림면에서 분리됐다. 이때 청수1구 는 청수리로, 청수2구는 산양리로 분리돼 독립된 행정리가 됐다. 4·3 기간 청수리에서는 토벌대와 무장대에 의한 주민 학살사건이 번갈아 벌어 졌다. 주민들은 마을에 머물기가 두려웠으나 피신할만한 큰 오름이나 곶자왈이 없었기 때문에 주변 들녘이나 굴에 숨어지내야 했다. 청수리 주민들의 대부분 희생은 1948년 11월 23일 해안마을로 소개한 이후 발 생했다. 그 이전 청수리 주민들이 희생당한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8년 4월 16일: 문달윤(19, 남)은 친척 문달수를 찾던 경찰에 의해 저지지서로 연행된 뒤 총살됨 5월 9일: 금악국민학교 교장으로 있던 이병화(42, 남)는 퇴근해 귀가 중 무장대에 납치돼 피살됨 5월 30일: 응원경찰이 청수2구(산양리)를 기습해 주민들을 청수국민학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