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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1948년 4월 5일: 저지지서 경찰과 경찰보조원이 명이동을 급습해 무장대 혐의 자 현봉희(25, 남)의 처와 이달우(30, 남)의 가족을 감금함 4월 7일: 무장대가 저지지서를 습격해 방화함. 고창윤(17, 남)과 김귀원 (22, 남), 김태준(28, 남)이 무장대에 피살당함 4월 8일: 저지지서 경찰이 명이동을 급습해 조일화(20, 여)에게 남편 이 달우(30, 남)의 행방을 추궁하다 딸(1, 여)과 함께 학살함 4월 12일: 저지지서 경찰이 고시홍(58, 남, 현봉희의 장인)을 연행한 뒤 학살함 4월 20일: 저지지서 경찰이 무릉리 친척집에 피신해 있던 이달우(30, 남, 이명 이달오)를 연행해 총살함 5월 13일: 무장대가 저지리를 습격함. 경찰 김인하(28, 남)가 교전 중 사 망하고 문인(58, 여)과 문명조(65, 남), 박용주(58, 남)가 무장 대에 살해됨 5월 13일 무장대의 습격 후, 경찰측에서는 저지에 전남부대로 불리던 응원경찰 40명을 파견해 주둔케 했다. 응원경찰은 명이동 주민들이 임시 수용됐던 남동 공 회당을 임시 숙소로 정하고 작전에 나섰다. 응원경찰의 주둔으로 무장대의 활동 은 꼬리를 감춰 마을은 일시적으로 평온해졌다. 그러나 이 응원경찰은 상명리와 청수리, 금악리 등 관할지역을 휩쓸고 다니며 주민들을 학살하기도 해 또 다른 폐 해를 가져다줬다. 그러던 1948년 11월 23일, 명이동에 소개령이 내려졌다. 명이동 주민들은 지 서가 있는 저지 1구나 청수 1구로 소개했다. 그러나 곧 이어 12월 5일에는 저지 1구에도 소개령이 내려져 명이동 주민들은 해안마을인 고산 등지로 2차 소개해 야 했다. 명이동 주민들에 대한 학살은 고산 등지에서도 이어졌다. 소개 이틀만인 12월 7일, 양중빈 등 10여 명이 고산중학교 동쪽 밭에서 집단학살됐다. (고산리-학살 터-고산중학교 동쪽밭, 참조) 또한 소개 가지 않고 한수기곶 등지로 피신했던 주 민들도 많이 희생됐다. 이들 중, 저지 지경에서 학살된 사건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