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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3 한경면 9. 저지리 저지리는 4·3 시기 1구(수동, 움부동, 중동, 동동)와 2구(남동, 명이동)로 나뉘 어진 큰 마을이었다. 저지리는 토벌대와 무장대 간의 주요 충돌지였고, 4·3이 일 어나기 전부터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저지리가 이렇게 된 데에는 마을에 저지지 서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제주도 중산간 마을 중 지서가 있던 곳은 성읍 리와 저지리뿐으로 저지지서는 저지를 비롯해 청수, 조수, 낙천, 상명, 금악 등 한 림면의 여섯 개 중산간 마을을 관할했다. 저지리 내에서도 1구 마을과 2구의 명이동은 사정이 달랐다. 지서가 있던 1구 는 지서의 영향으로 젊은이들이 경찰특공대원으로 활동하는 등 우익 성향을 보였 다. 상대적으로 1구에서 산쪽으로 2㎞ 가량 떨어져 곶자왈과 인접한 명이동은 피 신한 사람이 많았고, 무장대의 영향력이 미치면서 좌익마을로 인식됐다. 주민들 이 얘기하는, ‘명이동에서만 희생자가 99명이나 되었다.’고 하는 말은 이런 배경 속에서 나온 표현이다. 저지리에서 첫 사건은 1948년 2월 9일, 이 지역 출신 청년들이 지서로 몰려가 돌을 던지면서 발생했다. 이후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는데 4·3 초기 주요 사건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