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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 제주4·3유적 Ⅰ_ 제주시편 하동 출신 중 4·3 때 희생된 사람은 많지 않다. 희생자는 2명으로 조수국민학교 에서 교사로 근무하다 1948년 11월 22일 학살된 김창심 외에 1명(춘생이 동생) 이 더 있을 뿐이다. 하동 호주로는 김술생, 강정은, 김석주, 김순경, 김인봉, 창호 부친, 김순우, 강 중옥, 김기옥, 순석이 부친, 김기옥 부친, 김원호, 김순숙, 김석두 조부, 김석두, 김 석두 숙부 3명, 김한석 부친, 김한석 숙부, 조규하 부친, 김해옥, 한백승, 김두표, 김두표 제, 김형삼, 김창심, 김창여, 강문종, 김일봉, 강봉의, 김창원, 강승익 조부, 강만백, 김기생, 김기용, 고희경, 이춘생, 김희진, 김희중, 김철원 부친, 김일도 조 부, 문양칠, 김문숙 부가 있다. 다. 현황 현재 아스팔트 길이 마을 중심을 가로지르는 마을터에는 옛 올레와 대나무 숲, 팽나무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군데군데 집 몇 채가 새로이 들어섰을 뿐 큰 변화 는 없다. 2012년 조수리 1655-1번지에 하동 잃어버린 마을 표석이 세워졌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4·3 때 잃어버린 마을 조수리 하동 한경면 조수리 ‘하동’은 제주4·3 당시 40여 호 2백여 명의 주민들이 농사와 축 산을 하면서 살아가던 조그마한 자연마을이었다. 1948년 11월 22일 조수국민학교 학살사건에 하동 출신인 당시 조수국민학교 교사 김창심 씨와 또 다른 한 주민이 총살을 당했으며 12월 3일에는 토벌대들이 마을을 방화함에 따라 일부 주민들은 고산, 두모, 신창 등지의 해안마을로 소개 (疏開)되어 생활해오다 1949년에 중동에 성을 쌓고 집단생활을 해왔다. 1956년 경에는 하동마을 정착단이 조직되어 마을 재건을 시도하였으나 중동 에 살면서 하동에 있는 밭을 경작하는데 큰 불편이 없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재 건이 이루어지지 않아 오랜 설촌 역사를 지닌 하동마을은 사라지게 되었으며 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