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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조수리 주민들은 마을 사람들이 많이 학살된 원인은 저지지서 지서장을 거쳐 두모지서 지서장으로 근무했던 김문경의 모함 때문으로 여기고 있다. 이에 대해 서는 문기방(2003년 작고)이 『조수리 遺傳書』라는 저술에서 부친 문양호(45)가 두모지서에서 고문치사 당한 일과 일가족 9명이 몰살된 조덕표 집안 사연 등 조 수리 주민들의 학살사건을 자세히 기록해 김문경의 만행을 고발하기도 했다. 이 유전서는 문씨가 영구보존키 위해 습자지에 먹으로 글을 쓴 후 닭 깃털에 동백기 름을 적셔 한 장 한 장 발라 말렸다. 문씨는 이 기록에서 조수리 희생자를 80여 명 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 재건은 다음해 봄인 1949년 5월부터 1차 복구가 시작됐다. 이 1차 복구에 는 조수국민학교를 중심으로 중동과 대동마을 일부를 포함해 성을 쌓았다. 그러 나 이때 복구된 성은 저지리의 수동과 조수, 낙천 주민들이 모두 모여 살기에는 너무 좁았다. 그래서 그해 가을에는 2차, 다음 해인 1950년 봄에는 3차로 성을 늘려 쌓았다. 현재 조수리에는 1차, 2차 때에 쌓은 성의 일부가 남아 있다. 이번 조사에서, 지난 2003년 조사 당시 확인했던 고지락동산 1차성과 2차 중 동성은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 옛터로 정리했다. 그대신 1차 중동성의 북서쪽 끝 부분과 2차 신동성의 일부 흔적을 새로 확인하여 추가했다. 현재 정부가 4·3희생자로 인정한 조수리 주민은 52명(남성 50명, 여성2명)이다. 1) 잃어버린 마을 <조수리 하동> 가. 소재지 제주시 한경면 조수리 1641번지 일대 나. 개요 조수리 하동에는 당시 40여 가호 200여 명의 주민이 살았다. 하동은 조수국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