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0page
1222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살함 중산간 마을 주민들이 대거 고산리로 소개한 직후 고산리에서는 이들 소개민을 대상으로 한 학살사건이 수차례 발생했다. 그중 낙천리 주민들이 학살된 사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48년 12월 18일: 12월 16일 두모리가 무장대의 습격을 받자, 토벌대는 소개민 중 청년들을 연행해 한림국교 주둔 군부대에 인계함. 그 후 취 조를 받은 낙천리 주민 고대진(31, 남)을 비롯한 9명은 이날 고 산중학교 동쪽밭에서 고산지서 경찰에게 총살당함. (고산리–학 살터–고산중학교 동쪽밭, 참조) 1949년 2월 20일: 김계탕(20, 남)과 김명춘(18, 남), 오진효(22, 남) 3명은 고산지 서로 연행된 뒤 제주경찰서로 이송됨. 2월 20일 무장대가 도두 리를 습격하자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도두리 궤동산 동녘밭에 서 학살당함. (도두리–학살터–궤동산 동녘밭, 참조) 1950년 8월 20일: 김우현(19, 남)을 비롯한 김보경(40, 남), 김보만(24, 남), 조난 아(49, 남), 조붕아(44, 남), 조형배(16, 남) 6명이 예비검속된 뒤 섯알오름에서 학살됨 고산 등지의 해안마을로 소개했던 낙천 주민들은 소개한 이듬해인 1949년 봄 조수리가 복구되자 조수로 들어왔다. 그 후 낙천 주민들은 조수리에서 1년을 살 다 1950년 5월 낙천 마을에 성을 쌓고 돌아왔다. 1년 반만의 귀향이었다. 현재 정부가 인정한 낙천리 4·3희생자는 모두 37명(남성 35명, 여성 2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