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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7 한경면 다. 현황 조두리동산은 한국뷰티고등학교 정문 건너편의 월성사 뒤쪽에 있다. 뷰티고 정 문에서 직선거리로 약 90m 정도 떨어져 있다. 현재 조두리동산 주변은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학살 장소는 조두리동산 주변이지만 증언이 엇갈리고 있어 정확 한 위치는 파악하기 어렵다. 3) 주둔지 <고산지서> 가. 소재지 제주시 한경면 고산로 39-3 (한경면 고산리 2750-10번지) 나. 개요 고산지서는 고산경찰관주재소라는 이름으로 1910년에 설치돼 일제강점기 한 림면(당시 한경면은 한림면에 속해 있었음) 서부지역을 관할했다. 해방 후에는 1945년 10월 21일 고산경찰지서로 개칭돼 활동했다. 고산지서의 첫 발포사건은 2·7사건 직후인 1948년 2월 11일에 발생했다. 이날 2구 청년들이 주축이 된 시위대가 지서 앞에 모여 구속자 석방을 요구했다. 이 과 정에서 경찰은 발포를 했고, 시위를 주도했던 청년인 신응선이 다리에 부상을 입 고 검거됐다. 나머지 청년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1948년 11월 중순께부터 시작된 중산간 마을 초토화작전 이후 제주도 각 지역 의 경찰지서는 토벌작전의 근거지였다. 이로 인해 지서에는 많은 사람들이 검거 돼 있었고, 이들은 무수한 고문을 받다 총살됐다. 최근 각종 자료나 증언을 보면 당시 처형된 사람들의 대다수는 무고한 민간인들이었다. 고산지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산지서에서는 숱한 소개민들이 검거돼 고문 받 다 처형됐다. 4·3 시기 고산지서에 근무했던 경찰 중 서청 출신 현처묵(1948. 12. 12~1949. 1. 6 근무) 지서장은 말 그대로 최고 악질로 소문이 났었다. 한 증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