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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고산 가면 중학교 앞에 절이 하나 있어요. 그때는 그곳에 집도 하나 없는 논밭이었죠. 난 면회도 시켜주지 않고 해서 돌아오는데…, 헌병이라. 화이바에 흰띠 두른. 헌병들이 짚차에 사람들을 가득 싣고 가다 거기서 사람들을 내리게 하고는 세워 놓고 총으로 쏘 는 거예요. 사람들이 해득해득 쓰러졌죠. 군인들은 그냥 가버렸어요. 죽은 사람이 고태 경, 이호남, 조가천…. 난 어떡할까 하다 집에 가니 할머니하고 어머니가 ‘야, 느네 하르방하고 아방이 거기 서 죽엇저’ 허는 거예요. 난 확인하러 가고 싶었죠. 그러나 당시에는 고산에도 성을 쌓 고 문을 달고 있는 때여서 못 가게 했어요. 안 되겠어요. 난 할머니하고 어머니를 두고 성을 활딱 뛰어넘고 논밭으로 달려갔어요. 죽은 사람들은 하얀 포승으로 손이 뒷결박 돼 있었어요. 그때는 조수사람만 일곱 사람 정도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난 무서움도 없 이 시체들을 모두 뒤집어 봤죠. 그러나 할아버지와 아버지 시신은 없는 거예요. 나는 곧 성 안으로 들어가 ‘할아버지하고 아버지는 저기 없어요’ 했죠. 사람들이 죽은 후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바로 나왔어요. 잡혀가서 지서에서 열 흘 정도 산 거죠. 두 분은 지서에서 맞고, 전기취조도 많이 당했어요. 그때 두 분과 김양 옥 씨라는 분 세 분이 살아나왔는데 김양옥 씨는 육십도 안 돼 돌아가셨어요. 우리 아 버지도 쉰여섯에 돌아가셨는데 그때 후유증으로 빨리 돌아가신 거죠. 내가 볼 때 전기 취조를 어떻게 심하게 받았는지 돌아오니까 잘 먹지도 못하고, 치료도 못 하고…. 우리 할아버지 하는 얘기가 이런 시기에는 돈이고 뭐고 사람 목숨만 살면 된다고 했어요. 뇌 물 덕분에 살았는데 우린 그때 재산을 다 탕진해버렸어요.” 조두리동산 일대 (가운데 나무가 우거진 곳이 조두리동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