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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한종의사 가문의 독립운동가
김한종의사의 아버님 김재정(일명 김재완)의사는 홍주의병장으로 활동하였고 대한광복회 충청도지부에는 김한종의사 가문의 인물들이 다수참여하였다. 김재풍의사는 김한종의사의 삼촌으로 대한광복회가 국내의 소자산가들애게 고시문을 발송할 때 고시문에 날인할 인장을 직접 새겨 김한종의사에게 전달아였으며 충청도에서 군자금 모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김재창은 대한광복회 충청도지부가 관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연락거점으로 주로 활동하였다.
예산에 설치했던 미곡상을 김재창이 담당하고 있으며 인천의 이재덕 방에 설치됐던 연락거점에서의도 김재창의 활동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밖에 김성묵 김원묵 김재철 김재인 등은 군자금 모집시에 정보를 제공하거나 대한광복회원들이 활동할 때에 이들을 피신시키거나 무기를 보관하였다가 전달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 부친 김재정의사 (음력 1862.9.23~1940, 7. 1) 양세정려문을 하사받은 효행가문에서 출생하신 김재정의사는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고 천문지리까지 능통한 유학자이섰다. 김재정의사는 예산지역에서 서당을 차려 제자들에게 항일 구국사상을 고취시키던 중 을사 보호조약(1905)이 이루어지자 분을 참지 못하고 1906년 2월 광시장터에서 동지들을 모아 민중식선생과 함께 홍주의병에 참가하여 의병장겸 소모관으로 활동하셨다. 홍주의병이 청양합천싸움에서 일본군에게 때 하자 김기우·박재현·박창노 성달영 등 홍주의병에 가담했던 의병들을 신흥리 자신의 집으로 피신시키고 재기를 도모했다. 김재정의사의 절의정신은 그의 제자 김상준, 이재덕은 물론 동생인 김재풍과 아들인 김한 종에게 전송되었으며 이러한 영향으로 김한증 기문과 제자들 중에서 다수의 대한광복회 회원이 배출되었다. 일제의 한국강점 이후에는 아들 김한종의사와 함내난 강력치에서 활동하다 3년여의 옥고를 치루기까지 하셨다.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을 추서하였다.
▣ 김재풍 의사(1884.2.19 ~ 1950.5.25) 김재풍의사는 김한종의사의 삼촌으로 김재정에게 수학하였으며, 성리학 및 한의학에도 능동하셨다. 조카인 김한종의사를 도와 대한광복회에 참여하여 고시문에 날이하는 인장을 직접 새겨 김의사에게 전달했으며 충청도에서 군자금모집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만주지방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1980년 정부로부터 건국공로훈장을 추서받았다.
▣ 김재창의사 (1887.2.23 ~ 1961.4.14) 김재청의사는 김한종의사의 일가로서 예산에 설치했던 미곡상을 담당하였으며 인천등지의 연락거점과 활동연계를 이루며 활동했다고 이게 일제에 체포되어 징역7년의 옥고를 치렀다. 1977년 정부로부터 건국공로훈장을 추서받았다.
▣ 김원묵의사(1891.2.3 ~ 1972.2.28) 김한종의사의 일가인 의사는 대한광복호에 가입하여 군자금모집에 대한 포고문 발송하여 군자금 모집활동을 했다. 1918년 1월 친일활동을 자행했던 도고면장 처단시 편익을 제공하고 처단시 사용한 권총을 보관하고 있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징역 6월의 옥고를 치렀다. 의사는 1983년 정부로부터 건국공로훈장을 추서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