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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제주4·3유적 Ⅰ_ 제주시편 3. 위령비 건수기 우리들이 말 못한 말들이사 살아 있는 그대들인들 어찌 모르랴 그대들의 가슴 깊이 묻어두었다가 아들 손자들에게도 전하여 다오. 아름다운 우리 고장 제주도가 다시는 그런 비극이 없는 진실로 평화로운 섬이 될 수 있도록 서로 손을 잡고 굳게 약속하여 다오. 예비검속희생자 위령비 건수기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전면적인 침공으로 한민족은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에 휘말렸다. 이날 정부에서는 후방의 민심교란을 우려하여 치안국장의 명의 로 전국경찰에 요시찰인 전원을 구금할 것을 시달하였다. 이것이 바로 비극을 몰 고 온 예비검속령이었다. 이 미명 아래 제주도 관하 4개 경찰서(제주읍, 서귀포, 모슬포, 성산포)에서는 선량한 공무원, 교사, 보도연맹원, 농민, 학생, 부녀자에 이르기까지 물경 1500여 명을 구금하였다. 당시 전황은 악화되어 수도 서울은 북한군에 점령당하고 정부 는 대전을 거쳐 8월 18일 부산으로 후퇴하였다. 만일 부산마저 북한군의 수중에 들어갈 때 제주도로 옮겨야 할 상황이었다. 따라서 사전에 이곳을 반공기지화하 여 두려는 무모한 발상에서 무고한 예비검속자를 무참히 학살하는 반인륜적인 범 죄를 자행하였던 것이다. 당시 제주경찰서 관할 3개 읍면(제주읍, 애월면, 조천면)에서 1,000여명이 경 찰서 유치장과 산지 (구)주정공장에 분산 구금되었으며 그 해 7월 16일(음 6월 2 일)과 8월 4일(음 6월 21일)에 알몸차림의 500여 명을 배에 태워 먼 바다에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