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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의 정규 경찰병력의 지도력으로서 가급적 다수의 민중을 동원 활용토록 하여야 함” 이라고 했다. 또한 당시 제주신보(1952. 5. 20.)도 이와 관련한 경찰국장의 담 화 기사를 실었다. “당면 제반 문제 관해 윤(尹)국장 담화 윤 경찰국장은 19일 당면한 제반 문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 △잔비 섬멸에 관하여- 4월 초순부터 전개한 한라산 잔비 섬멸 작전은 중앙 직접 지 휘 하에 월여간 계속되었으나 잔비들의 도피로 접적(接敵)이 여의치 못함과 입지조건의 불리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음은 유감이다. 현재도 소탕전을 계속 중이며 종래 의 전투주둔소를 20 내지 30리 깊숙한 밀림지대에 전진 주둔시켜 포위망의 압축과 적 의 행동 저지에 병력 증강과 시설 완비로 만전을 기하고 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도민 의 협조와 육훈(陸訓)의 지도편달에 감사하며 금후의 성과에 기대하여 주기 바란다.” 당시 남성대 주둔소는 삼각형 모양으로 축성하고 모서리에는 높고 둥그런 초소 를 설치했다. 성담에는 간격을 두고 총안을 배치했다. 또한 주둔소 내부에는 숙식 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는데 부식 등은 마을에서 제공받았으며 식수는 주둔소 남성대 주둔소의 허물어진 초소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