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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 한경면 5. 용수리·용당리 용수리는 한경면 서쪽에 자리한 해안마을이다. 4·3 시기 용수리는 1구(현 용수 리), 2구(현 용당리)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리고 1구는 다시 앞동네(전동, 접지물) 와 뒷동네(후동, 등동거리, 장안내, 모살물)의 2개 자연마을로 구성돼 있었다. 원래 용수리는 두모리에 속해 있었다. 그러다가 19세기 후반 두모리에서 분리 되어 발전하기 시작했고, 1953년에는 2구였던 용당리가 분리돼 나갔다. 4·3 시기 용수리는 주민들뿐만 아니라 소개민의 피해가 주변 마을과 비교해 많 지 않은 편이다. 이에 대해 홍재운(1930년생, 남)은 용수리 구장의 영향력 때문이 었다고 이야기했다. 당시 용수리 구장이었던 고창국은 고산지서장 현처묵도 존중 했던 인물로 용수리 주민뿐만 아니라 소개민들까지 보호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이전까지 용수리에는 별다른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었다. 1948년 11월 초토화작전이 수행될 시기까지 현재 확인된 용수리 주민의 피해 는 다음 2명이다. 1948년 10월 미상일: 용수리 주민 김두인(33, 남, 농업)이 토벌대에 의해 고산지서로 연행됐다 주정공장으로 이송됨. 마을 사람들은 물론 기족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