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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8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비검속되던 날, 진천석은 지서의 호출을 받았다. 당시 청년단장이었던 김영진이 만류했으나, 그는 그대로 지서에 나갔다 변을 당한 것이었다. 신창리의 또 다른 희생자로는 김승은(18, 남)이 있다. 김승은은 경찰로, 남원지 서 근무 중 무장대의 습격을 받고 부상을 당했다. 그 후 제주읍에 있던 큰형 집에 머무르며 치료를 받았다. 그는 1949년 5월 23일, 신창리의 부모집으로 오던 중 무장대의 습격을 받고 사망했다. 신창리는 다른 마을과 달리 큰 위험성은 없었으나 방어를 위해 4·3성을 축성했 다. 정확한 축성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주변 마을들과 비슷한 1949년 1~2월께일 것으로 추정된다. 신창리 성은 두모리 성과 연결해 축성됐다. 현재 그 흔적은 찾 아볼 수 없으나 성담이 있었다고 확인 가능한 곳은 지금의 신창성당(신창천주교 회) 북쪽 지점이다. 그러나 이곳 역시 성담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고 소나무들만 무성하다. 현재 정부가 인정한 신창리의 4·3희생자는 남자만 4명이다. 1) 학살터 <빌레왓> 가. 소재지 제주시 한경면 신창리 나. 개요 빌레왓은 당시 소나무 밭이었다. 두모지서(현 한경파출소)에서 동남쪽으로 약 1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고창선(1927년생, 남)이 2003년 이곳에서 일어난 학 살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제가 처음 봤던 두모지서 앞 논밭 사건이 일어난지 일 개월 후예요. 그때는 김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