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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7 한경면 4. 신창리 신창리는 4·3 시기 상동과 신흥동(숭굴왓 일대)의 2개 자연마을로 구성돼 있었 다. 현재는 상동과 중동, 하동, 신흥동의 4개 마을이 있다. 면사무소가 소재하고 있어 한경면에서 가장 번창한 마을이다. 신창리는 본래 두모리에 속해 있다 1909 년에 분리됐다. 실제로 신창리와 두모리는 건물들이 죽 이어져 있어 다른 마을이 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신창리는 일주도로를 따라 북쪽으로는 두모리, 남쪽으로 는 용당리와 접하고 있다. 신창리는 현재 희생자가 4명만 확인될 정도로 4·3 피해는 거의 입지 않았다. 제 주도 전역에서 가장 피해가 컸던 1948년 11월 이후 몇 달 동안의 초토화작전 시 기에도 오발사고에 의한 희생만 있었을 뿐 별 다른 사건은 없었다. 이에 대해 한 증언자는 당시 청년단장이었던 김영진(전 한경면장)의 역할이 컸다고 기억한다. 오발사건은 1949년 2월 24일 발생했다. 박춘우(17, 남)는 마을 서기를 맡고 있 으면서 청년단원으로 활동했다. 이날 그는 두모지서에서 회의를 한다는 호출을 받았다. 그는 두 살 먹은 딸을 안고 지서로 향하던 중 팽나무 아래 정자에서 총격 을 받고 사망했다. 당시 총격은 경찰이었던 현윤호의 오발에 의한 발사였다. 그 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구장이었던 진천석(36, 남)이 예비검속됐다. 그는 1950년 8월 20일 모슬포 섯알오름에서 다른 희생자들과 함께 학살됐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