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1page
1193 한경면 3. 금등리 금등리는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길게 뻗은 마을로 동쪽으로 판포리, 서쪽으로 는 두모리와 중산간 지역으로는 조수리와 접하고 있다. 본래 두모리에 속했던 마 을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초 마을이 커지면서 분리돼 지금의 금등리가 되었다. 4·3 시기에도 금등리는 해안지역인 본동(하동)과 중산지역에 가까운 수장동(상 동)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본동과 수장동은 직선거리로 2.5km 정도 떨어져 있었 고, 당시 수장동은 20여 가호의 주민들이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금등리는 4·3 시기에도 피해가 거의 없었던 마을이다. 현재 확인된 희생자는 5 명이다. 첫 번째 희생은 1949년 초에 발생했다. 1949년 1월 13일 판포리가 무장 대의 습격을 받았다. 그 직후 두모지서는 주변 마을에서 주민 몇 명을 연행했다. 이때 금등리에서 변경숙(28, 남)이 연행된 뒤, 20여일이 지난 2월 7일 두모지서 앞 논에서 총살당했다. (두모리–학살터–두모지서 앞 논, 참조) 변경숙이 학살된 뒤 더 이상의 희생은 없었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2명이 추가로 희생됐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1950년 6월 29일 김운학(34, 남)과 송병언(36, 남, 이명 송승언)은 모슬포경찰서로부터 ‘훈련을 받으러 식량을 가지고 나오라’는 통지를 받고 갔다. 그 후 두 사람은 모슬포 절간고구마 창고에 갇혔다가 8월 20일 모슬포 상모리 지경 섯알오름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학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