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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0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남)은, “폭도들은 철창과 칼만 갖고 있었다. 그날 주민과 폭도가 뒤섞인 속에 경찰 이 마구 총격을 가해 희생자가 늘어난 것이다”고 증언했다. 1 이윤옥(1936년생, 남) 2 도, “그날 총을 가진 건 경찰들뿐이었다. 그러니 그 혼란통에서 진씨 할머니도 누구의 총에 맞았겠나? 언젠가 TV에 할머니 얘기가 나오는데 누구의 총에 턱을 맞은 건지 애매하게 얘기하더라고. 경찰이야” 하고, 그날을 기억했다. 다른 한 주 민이 덧붙였다. “서영평 씨 집이 높은 곳에 있어 보초막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논 의 장소로 쓰였다. 아마 그런 사실을 누군가 산에 알린 것 같다. 결국 무장대는 그 보복으로 보초 서는 문제를 논의 중이던 서씨 집을 습격해 사람들을 죽이고 불 지 른 것이다. 그날 서씨 집에서만 아홉 명인가 죽었다. 서씨 자신은 가족들을 도피 시키다 총에 맞아 죽었다.” 이날의 사건 후에도 마을 사람들의 희생은 계속됐다. 1949년 1월 14일: 김옥산(33, 여)은 저지리 명이동 현행선과 결혼해 생활하다 소 개령이 내려지자 판포리 친정집으로 소개했었는데 무장대가 판 포리를 습격한 다음날인 이날, 토벌대는 그를 연행하고 상동에 주민들을 집합시킨 뒤 그 앞에서 김옥산을 벌거벗겨 구타하고 희롱하다 총살함 2월 15일: 이찬석(38, 남)은 지난해 12월 2일 무장대와 내통했다는 혐의 로 두모지서로 연행됐다가 이날 두모지서 앞 논에서 총살당함. 함께 학살당한 문석찬(33, 남, 조수리)은 금등리에서 소개생활 하던 중 김옥산의 형부라는 이유로 총살당함 (두모리–학살터– 두모지서 앞 논, 참조) 1950년 2월 3일: 무장대가 판포리를 습격하여 자택에 있던 김선옥(20, 남)과 김 양중(22, 남)을 끌고 감. 그 후 두 사람은 행방불명됨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7월 초순 들어 구장이었던 차영남(39, 남)이 예 1) 제민일보4·3취재반, 『4·3은 말한다』 판포리편 2) 2015년 증언. 제주시 거주, 판포리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