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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2025년 4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우리문화 사랑방 에까지 봉해졌으며, 선조와 광해 군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낸 심 희수는 지체장애인이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전남 고흥의 소록도에는 지금으로부터 109년 전인 1916년 조선총독부가 자혜 의원(慈惠醫院)이라는 이름으로 한센병 환자 100명을 수용하는 시설을 설립했다. 그 뒤 일제 당국 은 1931년 만주 침략 이후 ‘나예 방법(한센병예방법)’을 제정하고, 이를 근거로 하여 일반 사회로부 터의 차별과 절대적 격리정책을 소록도에 적용하였다. 소록도 갱 생원은 환자들의 강제노동, 감금, 생체실험, 단종(斷種) 등이 마구 이루어져 마치 종신감옥처럼 되 어버렸다. 고흥반도의 끝자락 녹동항에서 1㎞가 채 안 되는 곳에 있는 소록 도는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 슷하다고 하여 생긴 아름다운 이 2000년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2011년 한국문화사랑협회를 설립하여 한국문화 를 널리 알리고 있다. 또한. 2015년 한국문화를 특화한 국내 유일의 한국문화 전문 지 인터넷신문 『우리문화신문』을 창간하여 발행인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 으로는 『맛깔스런 우리문화속풀이 31가지』, 『하루하루가 잔치로세(2011년 문화 관광부 우수도서)』,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종가』, 『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 『한국인이 알아야 할 한국문화 이야기』 등이 있다. 필자 김영조 름을 가졌지만, 과거 한센병 환 자들의 슬픈 삶과 고통이 깃들어 있다. 1941년 수용된 한센인은 6,000명을 넘었으나, 지금은 600 여 명의 환자가 사랑과 희망을 가 꾸고 있다. 한센병은 적절한 치료 를 시작하면 일반적으로 다른 사 람에게 전염되지 않으며, 성적인 접촉이나 임신을 통해서도 감염 되지 않는다는데 한센인들은 광 복 뒤에도 여러 번의 학살사건과 인권유린으로 비참함 속에서 살 아갔다. 소록도의 한센인들은 이 들에 대한 잘못된 시선과 정책 탓 에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 다. 이러한 일제 식민지적 장애인 관이 현대까지도 계속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다. 얼마 전 장애인 시설이 동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며 주민들 이 시위한 사건이 보도된 적이 있 고, 장애인 시설에서 직원들이 장 애인들을 폭행했다는 뉴스도 나 왔다. 그런가 하면 장애인들이 나 들이할 수 있는 여건이 열악하다 는 것도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조 선시대보다 훨씬 살기 좋은 이 시 대에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 은 아직도 열악한 상황이라 안타 깝기만 하다. 「기산 김준근 ‘판수 경닉는 모양’」, 시각장 애인인 판수(判數)가 북과 징을 두드리며 독경하는 모습(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채제공은 사시였지만 영의정까지 올랐다. 보물 「채제공 초상 – 금관조복본(金冠朝服 本)」, 개인소장(왼쪽) / 보물 「채제공 초상 – 시복본(時服本)」, 선경도서관 40여 년 동안 소록도 내 한센인들을 위 해 적극적인 의료 봉사활동을 했던 마리안느 와 마가렛 수녀가 살았던 집. 2016년 등록 문화재로 등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