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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1 한경면 12월 8일: 조수리(1명) – 이성혹(26, 남) 12월 11일: 조수리(3명) - 김평석(47, 남), 조유돈(37, 남), 현효선(35, 여, 조 유돈의 처) 12월 16일: 낙천리(1명) – 이동린(18, 남) 12월 17일: 저지리·청수리(각 2명) 인천할머니와 딸(신원미상) / 오국일(21, 남), 이승교(30, 남) 1949년 1월 3일: 청수리(1명) – 김맹일(31, 여, 이명 김명림) 2월 7일: 금등리(1명) - 변경숙(28, 남) 2월 15일: 판포리·조수리(각 1명) – 이찬석(38, 남) / 문석찬(33, 남) 당시 주민들은 주로 무장대와 내통했다거나 입산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학살됐 다. 12월 7일에는 경찰이었던 김원경이 무장대의 습격을 받은 뒤 행방불명되자 두모지서 경찰은 동생인 김원창(18, 남)을 학살했고, 1948년 12월 11일에는 아 버지인 김평석(47, 남)까지 총살했다. 12월 17일의 학살은 12월 16일 무장대가 한원리를 습격한데 대한 보복이었다. 경찰은 소개민들을 집합시킨 뒤 분명 내통자가 있다며 색출작업을 벌였다. 그러 나 내통자가 가려지지 않자 오국일(21, 남)과 이승교(30, 남)를 무장대와 내통했 다며 끌어내 총살했다. 그리고 두 여인을 입산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살해했다. 이 두 여인은 저지리 명이동 부모(某)씨의 가족으로 인천할머니와 인천딸로 불렸다. 이들은 이날 주민들 앞에서 공개총살됐다. 당시 대동청년단원으로 일하다 나중에 경찰로 근무했던 고창선(2003년 77세, 남)은 이곳에서 사건을 직접 목격했다. “나는 두모지서에서 총살한 사건 세 번을 보았어요. 그때가 날짜는 잘 기억 안 나요. 소개 후인 겨울이었을 거예요. 저기 지서 앞 논밭에서 서너 사람이 희생됐어요. 소개 온 사람이 아니고 다른 데 출동해서 잡아온 사람들이었어요. 당시 사상기록부에 기록된 사람으로 알고 있어요. 어디 사람인지는 모르고 산간 사람으로 남자란 것만 알아요. 처형은 밤에 했어요. 한 번 총소리 나면 다 죽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보고 죽창으로 찌르라고 해요. 확인사살이죠. 조금만 움직이는 것 같아도 가서 찌르라. 난 찌 르지 못했어요. 경찰들은 가서 보지 않아요. 15m~20m 거리에서 총만 쏘아 놓고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