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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삼각형 모양으로, 나머지 한 그루는 삼각형 안에 점의 형태로 심어져 있었다 한다. 이 네 그루의 나무 중 먹구슬나무에 1948년 5월 당시 국민학교 3학년 학생이 었던 고익조가 응원경찰에 붙잡혀 목에 밧줄이 묶인 채 매달리는 야만스런 수난 을 당했다. 당시 이 사건에 대해 박남진과 양서옥이 증언했다. “향사 앞에 우람한 나무들이 있었어요. 그 나무들이 4·3으로 다 없어지고, 지금 있는 나무들은 그 후에 새로 심은 것들이죠. 당시에 비행기는 무섭지 않았어요. 그런데 자동 차가 오는 게 보이면 무조건 도망쳤어요. 비행기는 하늘 위로 날아다닐 뿐 아무 일도 없 는데 자동차만 오면 어린아이, 어른 가리지 않고 체포하는 거예요. 그리곤 아이들에게 묻는 것이 너네 아버지 어디 갔냐, 너희 형 어디 갔냐 거든요. 무조건 패고, 말 안 한다 고 또 패고…. 고익주도 그날 재수 없어 붙잡힌 거죠. 작은 아이였어요. 경찰은 이 아이 목에 밧줄을 걸고 먹구실낭에 매달아 원숭이 장난하듯이 땡겼다 놨다 하면서 노리개 취급한 거죠. 응원경찰이 익주에게 삼촌 어디 갔느냐, 아버지 어디 있느냐,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이 안 나오니까 더 한 거예요. 익주가 나중엔 꾀를 부려 도망쳤죠. 하도 당해가니 안 되겠 다 싶어 내일 안내를 하겠다고 한 거예요. 그리곤 다음 날 저지경찰들을 데리고 여기저 기 돌아다니며 경찰들을 놀리다 물 떠오겠다고 해서 도망쳐 살았어요. 이 사람 죽은 지 5~6년 됐는데, 그때 열네 살이었어요. 당시 그 먹구슬나무는… 이것도 역사에 기록할만한 일인데…, 이 나무를 경찰에서 베 어버렸죠. 내가 직접 목격했어요. 작전상 불리하다고 나무들을 자르도록 한 거죠. 명월 방면에서 올라오다 보면 외소낭목이라고 소나무가 한 그루가 서 있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에서부터 여기까지 나무들을 다 잘라 버렸어요.” 당시 향사 앞마당에는 나무들이 울창해서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고, 주 민들의 모임터가 되기도 했다. 고익주가 목 매달렸던 나무나 나머지 세 그루의 나 무 모두 금악리 선배들이 3·1운동을 기념해 심었던 유서 깊은 것이었다. 지금도 금악주민들은 토벌대가 그 나무들을 베어버린 데 대한 안타까움을 주민 학살과 1) 팽나무와 고련목(먹쿠실낭), 다간죽낭, 건봉낭의 네 그루라 하나 더 많은 고증이 필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