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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사랑방 • 장애인의 날 117 포기해야 했고, 입학 거부 등 각종 수모를 겪어야 했다”라고 말한다. 대한민국에는 ‘장애인의 날’과 관 련 법률이 있지만 아직 여전히 장 애인의 차별 문제는 현재진행형 이다. 이와 관련하여 안동의 한국국 학진흥원에서 2023년 4월 펴낸 누리잡지(웹진) 『담(談)』에 「조선 시대 장애인 이야기」가 있어 살펴 보았다. 이 책에서는 조선시대 장 애인의 복지정책과 장애에 관한 생각이 현대의 인식과는 무엇이 다른지 다루고 있어 흥미로웠다. 이 책 가운데 ‘조선시대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란 부분에서 고 려대 정창권 교수는 조선시대, 장 애인에 대한 복지정책을 통해 시 정(侍丁), 곧 부양자(활동보조인) 를 제공하고, 쌀과 고기 같은 생필 품을 하사한 사례와 동서활인원 (東西活人院)과 제생원(濟生院) 같 은 구휼기관을 설치하여 위기에 처한 장애인을 구제하는 등의 다 양한 정책을 시행했다고 밝혔다. 북학파의 선구자 홍대용(洪大 容)은 그의 책 『담헌서』에서 “시각 장애인은 점치도록 하고, 언어장 애인과 청각장애인, 지체장애인 까지 모두 일자리를 갖도록 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장애 인을 무조건 집안이나 복지시설 에 가둬두고 장애 수당만 지급하 면 끝이라는 오늘날에 견줘 조선 시대 장애인에겐 사회적 장애는 별로 없었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 라보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오히려 차별 없어 특히 역사를 좀 아는 사람이면 조선시대에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과 복지정책이 오늘 날보다 훨씬 선진적이었다는 사 실을 알 수 있다. 곧 장애가 있어 도 과거시험을 통해 종9품에서 정 1품까지 올라 나랏일을 맡을 수가 있었다. 예를 들면 조선이 세워진 뒤 예법과 음악을 정비하고 나라 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큰 공을 세 운 허조(許稠)는 어려서부터 몸집 이 작고 어깨와 등이 구부러진 척 추장애인이었다. 하지만, 허조는 태종이 선위할 때 '이 사람은 내 주춧돌이다'라며 적극적으로 추 천했고 결국 세종은 그를 좌의정 에 올렸다. 또 사시(斜視)였던 번암 채제공 (蔡濟恭)은 정조 때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채제공은 세상을 뜨기 1 년 전인 1798년(정조 22)까지 임 금의 곁을 굳건하게 지키며 정조 를 도왔다. 그가 있었기에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정조가 꿋꿋 이 개혁정치를 펼 수 있었다. 특히 으뜸 벼슬 영의정에 오른 채제공 의 초상화를 보면 사시는 물론 곰 보 자국, 검은 얼굴, 딸기코 등도 그대로 그려 조선시대 초상화의 특징인 ‘전신사조(傳神寫照)’, 곧 형상을 통해 정신까지 전하는 것 임을 분명히 드러냈음은 물론 장 애인에 대한 시각이 혐오와는 거 리가 멀었음을 알 수 있다. 그밖에 간질 장애인이었던 권 균(權鈞, 1464~1526)은 이조판서 와 우의정에 올랐고, 영창부원군 제44회 장애인의 날 포스터 한국국학진흥원 누리잡지(웹진) 『담(談)』  2023년 4월호 「조선시대 장애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