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2page
116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답) 우리 마을에는 경찰이 주둔하지 않았어요. 근처 저지에 지서가 있어 우리 마을 도 관할이라고 자꾸 탄압이 왔어요. 자꾸 죄 없는 사람들을 불러가고 하니까… 아무 죄 없는 사람들도 경찰이라고 하면 무섭게 생각을 할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경찰을 피해 도망을 가니까 이 사람들은 잡아가는 거예요. 낮에는 사람들이 집에 있지 못했어요. 자 꾸 낮에 잡으러 오니까. (문) 5·10선거 때부터였습니까? (답) 그 즈음부터예요. 경찰들 하는 얘기는 왜 거기, 개역빌레궤로 갔느냐는 거죠. 주 민들은 자연스럽게 피한 건데…, 그 사람들 생각은 자기들이 잘못했으니까 피했다는 거 죠. 오자교 부근에서 돌아가신, 우리 마을에서 처음으로 희생된 그 분들도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문) 돌아가신 분은 몇 명? (답) 남식이 아버지인 김경생, 박두옥…. 그때 일곱인가 여덟인가 됐을 건데 모두 연 령 많은 분들과 불구자, 여자들이었어요. 무조건 집에 있는 사람은 잡아간 거예요. 이 사람들은 아무 죄가 없으니까 집에 있었던 건데…. 이건 또 집에 있다고 잡아간 거예요. 박해길 씨는 완전 불구자입니다. 목발 짚고 다니던 사람입니다. 어린 아이는 없었지만 노인도 있었어요. 경찰들이 저지지서로 잡아가다 박해길 씨가 잘 걷지를 못하니 먼저 학살터 오자교와 그 인근 (증언자 박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