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4page
1156 제주4·3유적 Ⅰ_ 제주시편 나. 개요 금악주민들은 1948년 11월 20일께 소개했다 1953년 7월 마을을 복구해 돌아왔다. 그러나 당시 금악리 상동으로, 38가호의 주민들이 살았 던 웃동네는 끝내 복구되지 않았다. 주민들이 본동을 재건하고 거기에 모여 살다보니 웃동네 는 자연 폐촌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당시 웃동네 호주로는 강안용, 김경환, 박도 여, 강인선 부친, 이원송, 이승원, 김신봉, 김신 학, 송창화, 송태화, 이신생, 김기학, 김태호 부 친이 있다. 다. 현황 금악리를 떠받치는 금오름 서남쪽에 옛 마을 터가 자리하고 있다. 당시 집터였던 곳에는 대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고, 올레 흔적도 군데군데 남아 있다. 웃동네에는 2003년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실무위 원회에서 표석을 세워 이곳이 잃어버린 마을임을 알려주고 있다. 현재 표석은 한 림읍 금악리 1281-1번지 남쪽 팽나무 밑에 건립돼 있다. 웃동네의 잃어버린 마을 표석 웃동네 여기는 4·3사건으로 마을이 전소되어 잃어버린 북제주군 한림읍 금악리 웃동 네 마을터이다. 4백여 년 전에 설촌된 유서 깊은 이 마을은 금악리 상동이라는 뜻 에서 웃동네로 불리웠고, 이씨 김씨 송씨 강씨 박씨 등 38호에 141명의 주민들이 밭농사와 우마를 키우며 정겹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4·3사건은 이 마을에도 비극으로 다가왔으니 1948년 11월 21일경 소 개령에 의해 주민들은 정든 마을을 떠나 한림리 협재리 등지로 뿔뿔이 흩어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