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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4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서를 습격한 무장대가 밤에는 금악리와 명월리를 습격해 금악 리 대한청년단 부단장 김태화(29, 남)·이윤학(25, 여) 부부와 강 공오(41, 남)를 살해함. 김임후(37, 여)는 남편 강안용을 찾아내 라는 무장대에게 죽창에 찔려 부상당한 뒤 유산함 6월 7일: 저지지서 경찰이 마을을 기습해 김정생(73, 남)을 비롯한 7명 을 저지지서로 연행해 가다 오자교와 그 인근에서 총살함 (아 래 학살터-오자교와 그 인근, 참조) 10월 26일: 전날, 봉화가 오르고 금악리에서 왓샤 시위가 일어남. 그러자 다음날인 10월 26일, 9연대 군인들이 금악리에 진입해 주민들 을 금악국민학교에 집합시킨 뒤 강두규(24, 남)를 비롯한 10명 을 끌고가 모슬포 서쪽 암매굴(일본군 탄약고 터)에서 총살함 (상·하모리–학살터–대정고 입구, 참조) 1948년 11월에 접어들자 응원경찰이 마을 향사에 와서 며칠씩 머무르며 토벌에 나섰다. 주민들, 특히 젊은이들은 집에 머물 수가 없어 숨어다니다 체포돼 총살되곤 했다. 금악리에 소개령은 11월 20일께 내려졌다. 그러자 다른 중산간 마을 주민들 이 그랬듯이 금악리 주민들 중 해안마을로 소개하기가 두려운 사람을 제외한 나머 지 사람들은 한림, 협재, 수원 등지로 소개했다. 그러나 소개지에서의 생활은 더 고 달팠다. 수시로 토벌대에 불려가 한림국민학교에 주둔한 서청특별중대나 군인들에 게 매를 맞고, 고문당하다 학살됐다. 다음은 소개지에서의 대표적인 학살사건이다. 1948년 12월 4일: 김원화(37, 남)를 비롯한 금악주민 4명이 12월 3일 무장대가 금능리를 습격한데 대한 보복으로 금능국민학교와 협재리 모 래밭에서 총살됨 12월 5일: 강석하(19, 남)를 비롯한 3명이 협재리로 소개했다 이날 한림 리 물왓에서 총살됨 (한림리–학살터–물왓, 참조) 12월 7일: 김원보(30, 남) 형제 4명과 다른 주민 2명이 한림국민학교로 끌 려가 고문을 당한 뒤 대림리 봉근굴에서 총살됨 (대림리–학살 터–봉근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