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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3 한림면 14. 금악리 금악리는 4·3 시기 본동(병대동)을 비롯해 동동, 중동, 웃동네(상동), 일동이못, 벵딧가름, 뒷동네, 오소록이 같은 여러 자연마을이 금오름 자락 이곳저곳에 자리 하고 있었다. 한림면 중산간 마을 중 가장 큰 마을이었던 금악리는 4·3을 거치면 서 주민 150여 명이 희생됐고, 상동과 일동이못, 오소록이, 동카름, 새카름마을은 복구되지 못한 채 잃어버린 마을로 변했다. 금오름 남서쪽 자락에는 1961년 아일 랜드 출신 임피제 신부가 세운 성이시돌목장이 위치해 있는데, 그 후 이 목장 안에 금악성당이나 성클라라관상수녀원, 성이시돌센터들이 속속 들어서며 천주교 성 지가 됐다. 현재 마을 남쪽 지역에는 넓게 골프장이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금악리에서는 4·3 발발 직후부터 크고 작은 사건들이 수차례 벌어졌다. 1948 년 11월 20일 마을이 소개되기 전까지 발생한 주민학살사건을 보면 다음과 같다. 1948년 5월 9일: 금악국민학교 교장 이병화(42, 남)가 금악리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아 활동하다 이날 무장대에게 살해됨. 이때 저지리 청년회장 강임생(42, 남)이 함께 살해됨 5월 14일: 박○○(27, 남)은 무장대 일원으로 한림지서 습격에 참여했다 습격을 미리 알고 대기하던 토벌대에 사살됨. 이날 낮, 한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