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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우리 땅 • 서울 연통부(聯通府) 기념비 115 조직, 국내외 연락과 항일투쟁 등 의 활동에 임하였다. 민강은 1919 년 3 · 1만세운동의 영향으로 국내 에서 추진된 한성(漢城)임시정부 수립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해 4 월 중국 상하이[上海]로 떠났다. 4 월 19일 김사국의 숙소에서 김유 인·안상덕 등과 더불어 국민대회 개최 준비에 대한 논의에 참여하 였다. 이 과정에서 운동자금을 동 화약방을 통해 전달하기로 결정해 국민대회 준비자금 출납을 담당하 게 되었다. 그러나 1919년 4월 말 경찰에 붙잡혀 5월 경성지방법원 에 송치되었으나 8월 8일 보석으 로 풀려났다. 민강은 이후에도 동화약방을 대 한민국 임시정부의 연락 거점으로 제공하여 국내외 독립운동의 중 개 역할을 담당하였다. 1919년 10 월 김필순·나창헌 등이 임시정부 의 행정조직인 연통부(聯通府)를 서울에서 설치하고자 할 때 동화 약방의 영업용 화물 취급점인 공 성운송점(共成運送店)을 활용하여 상하이로부터 독립운동 관련 문서 류를 수령해 전달하는 것을 약속 하였다. 민강은 같은 해 10월 31 일 일왕(日王)의 생일을 축하하는 천장절(天長節)을 기해 서울 등지 에서 만세운동을 벌일 때 활용할 격문 등을 받고자 하였으나, 사전 에 발각되어 당일 새벽 일제 경찰 에 붙잡혔다. 그는 1920년 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 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 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 를 치렀다. 정부는 1963년 건국 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서울 연통부’는 독립운동가들 의 활동 자금 마련에도 한 몫을 담당했다. 당시 활명수 한 병 값 은 50전으로 설렁탕 두 그릇에 막 걸리 한 말을 살 수 있는 비싼 가 격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으로 건너갈 때 돈 대신 활명수를 휴대했다가 현지에서 비싸게 팔 아 자금을 마련했다고 전해진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서울 연통부 지(址)’ 기념비 엄혹한 일제 치하, 우리민족의 독립을 위해 국내와 국외를 연결 하는 비밀 행정기관인 서울 연통 부를 현 동화약품 순화동 본사에 설치하고 활명수를 판매한 금액의 일부로 독립자금을 조달해 대한민 국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이를 기 념하고자 서울시에서는 광복50주 년인 1995년 8월 동화약품 본사 자리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서울 연통부 지(址) 기념비’를 세웠다. 서울 연통부 기념비는 동화약품 본사(서울특별시 중구 서소문로 9길 14) 앞에 설치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동화약품 본사 신사옥 신 축공사로 인해 찾아볼 수 없는 실 정이다. 빠른 시일 안에 이 기념비 가 다시 제자리에 복원될 수 있기 를 희망한다. ‘주식회사 동화약방’ 간판과 옛 건물 ‘대한민국임시정부 서울 연통부 지’ 기념비 (이상 동화약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