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3page
1145 한림면 장에서 3명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왔어요. 이날 나머지 상명 주민들은 저지지서로 끌고가 지서 축성작업을 시켰어요. 축성작업 을 하고 상명에 돌아와 보니 사람들이 죽어 있었지요. 시신처리는 그때 다했죠.” 이날 강태휴(17, 남), 강호경(37, 남), 김성남(60, 남), 김여화(42, 남, 김성남 아 들), 양계림(21, 남), 오원세(25, 남), 홍경호(40, 남), 홍병수(34, 남), 홍성만(30, 남), 홍윤(27, 남) 등 10명이 총살되고, 홍오만(32, 남), 김여생, 홍성진은 부상만 입고 살아남았다. 다. 현황 상명리 사거리에서 북동쪽으로 약 150m 떨어진 곳으로, 중산간서로와 명상로 사이에 위치한다. 큰케물에는 원래 작은 못이 하나 있었으나 현재는 도로에 편입 돼 아무런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학살은 바로 그 옆에서 이뤄졌다. ② 홍남학 집터 가. 소재지 제주시 한림읍 상명리 나. 개요 상명리에 소개령이 내려진 것은 1948년 11월 20일이었다. 무장대는 그 전날인 19일 새벽 홍계석 가족의 집을 습격했다. 당시 홍계석 가족은 마을에서 조금 떨 어진 곳에 홍계석과 세 아들이 집 세 채에 이웃해 살고 있었다. 무장대는 평소 홍 계석의 아들 홍남학 형제를 주목하고 있었다. 홍계석 일가족을 습격한 무장대는 집에 불을 지르고 떠났다. 무장대가 떠나자 이웃주민들은 불타는 집에서 홍계석 부부의 시신을 수습해 나왔으나 다른 가족들의 시신은 수습할 수 없었다. 상명 주 민들은 아침이 밝은 뒤에야 이들 가족이 학살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무장대의 습격으로 홍계석(55, 남)과 부인 김여수(57, 여), 아들 홍남학(27, 남), 며느리 강임생(22, 여, 홍남학 처), 양인선(31, 여, 홍남봉 처), 김연화(22, 여, 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