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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한광복회 충청도 지부의 활동. 충청도지부는 대광복회지부들 중에서 가장 규모가가 크고 활동이 많았던 지부조직이었다. 충청도지부의 활동상으로는 군자금오 집과 의협투쟁이었다. 군자금모집은 지부장인 김한종의사의 책임하에 전개되었으며 다른 어느 지역보다 활발하였다. 그 단적인 예로 1918년 일제경찰에 보고된 대한광복회포고문이 경북에서 20여통 서울에서 4통이 발견된 것에 비해 충남에서는 40여 통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군자금 모금. 먼저 충청도의 자산가를 조사하고 이들에게 보낼 "고시'라는 문서를 이재덕을 시켜 장곡면장이었던 정태복에게 면사무소 등사기를 이용하여 200여장을 등사하고 의사의 지렴에 의해서 김재풍이 제작한 "광복회지령회원감독장" "제의안인" "변창의" 명의의 인장을 날인하고 주의사항을 첨부하여 발송하였다. 한편 군자금의 원활한 모금을 위해 중국에서 우이견을 통해 발송한 군자금 모금을 독촉하는 자령장을 발송하였으며 이로인해 성과도 있었다. 일제의 경찰보고에 의하면 충청도지부에서 발송한 고시문은 160여 통에 이르고, 모금액 또한 170만원으로 보고되었다. 군자금의 모금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자 대한광복희는 통고문의 효력을 높이고 모금을 용이하게 하기위해 친일부호들을 처단하게 되었다. ▣박모씨 처단 (1917, 12. 11). 1918년 1월 충청도지부는 지부장 김한종의 지도하에 아산군 도고면장 박용하를 처단하였다. 박용하는 부하 면서기의 가족을 불우 하게 만들고 전면장을 옥사시키는 등 도고지역에서 이미 많은 비행을 저질렀으며 군자금 통고문을 받고도 의연금을 내지 않고 이것을 오히려 일본헌병에게 밀고했으므로 충청도 지부장 김한중의사는 김경태, 임동근을 시켜 처단하였다. ▣ 장모씨 처단 (1917. 11. 10). 김한종의사는 장씨부호를 처단하지 않고서는 광복회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며 채기중이 시기상조론을 주장했을 때도 실행하자고 주장하고, 충청도 지부원 유창순과 함께 처단에 관여하였다. ▣만주무관학교 건립. 김한종의사는 만주사령관 이석대가 순국하자 그 후임으로 김좌진을 만주로 보내며 서울 남문여관 어재하방에서 군자금 6만원을 주면서 송별시로 위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