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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1 한림면 12. 상명리 상명리는 4·3 시기 동동과 중동, 서동, 하동의 4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진 중산간 마을이었다. 상명리에 처음 토벌대의 학살이 시작된 것은 1948년 5월 29일이었다. 이 날 낮 에 저지지서 응원경찰은 마을을 기습한 뒤 주민들을 향사 마당으로 몰고 갔다. 이 와중에 경찰은 남자들만 보면 몽동이질을 해댔다. 200여 명의 주민이 향사 마당 에 모인 후에도 경찰의 무차별 구타와 돌멩이로 내리찍는 끔찍한 행동은 그치지 않았다. 곧 경찰은 가지고 있던 명단을 보며 주민들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호명된 10여 명의 주민들은 결박된 채로 저지지서로 끌려가다가 향사에서 500m 가량 떨어진 큰케물에서 경찰에 총살됐다. 이날 사건으로 강태휴(17, 남)를 비롯 한 10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했다. 1948년 11월 20일 상명리와 주변 중산간 마을 모두에 소개령이 내려졌다. 그 런데 소개 전날인 19일 새벽, 무장대가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있던 홍계석의 집 (홍남학 집터)을 습격했다. 당시 홍계석의 아들 삼형제는 우익활동을 하며 경찰과 가깝게 지냈다. 무장대는 그런 이유로 홍계석의 가족을 주목하고 있었다. 이날 습 격으로 홍계석의 가족 중 7명이 살해되고, 3명이 부상을 입었다. 4·3이 발발한 후인 5월 29일 이후부터 홍계석의 집이 습격받기 전까지 상명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