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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7 한림면 어떻게 그 사람이 끼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 후 이들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수소 문하다 갯거리오름에 있을 거라는 말을 듣고 시신을 처리해 온 거예요. 아마 사건이 나고 서너 달 뒤에 시신을 수습하러 갔을 거예요. 그때 시신은 살이 다 녹아버려 옷으로 구별했다고 해요. 유족들이 한 구씩 찾아 장례를 치러주었죠. 나는 그 굴엔 못 갔어요. 아버지가 갔죠. 우리 아버지가 시신을 수습한다고 제일 먼저 굴에 들 어가 시신을 들췄는데… 그때 시신에서 나온 독을 쏘여 그 후 시력을 잃어버리고 말았 어요. 잠자고 있는 시신을 건드리니까 유독가스가 폭발한 거죠. 아버님은 실명된 후에 도 여러 해 살다가 돌아가셨어요.” 이 사건을 『제주경찰사』(1990)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또한 이날 새벽에는 명월리 임창현의 집에 좌익청년의 습격이 있었다. 임창현 65세는 일제시대 면장을 지냈고 당시는 국민회 간부로 활약하면서 5·10선거에 입후보했다가 사 퇴한 사람이다. 이때 임창현은 한림으로 피해 집에 없었으나 임창현의 처 박모 여인 57 세가 살해당하고 집이 불탔다. 이 소식을 들은 임창현이가 아들 임보국 35세와 손자 임 순준 19세와 함께 집에 돌아와 장례를 준비하다가 폭도들에 의하여 3명이 납치되었다. 갯거리오름 일본군 진지동굴 옛터. 현재는 훼손돼 흔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