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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명월 주민들의 희생은 1948년 11월 20일 마을에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배가됐 다. 이날, 명월 상동과 중동 주민들은 강제로 하동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소개지 에서도 무사하리라는 확신을 갖지 못했던 많은 젊은이들은 소개하지 않고 마을 주변을 숨바꼭질하듯 숨어다니다 한 사람 두 사람 토벌대에 붙잡혀 학살됐다. 소개하지 않고 피신했던 주민들이 희생된 주요 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9년 1월 16일: 오찬규(67, 남)를 비롯해 홍계출(57, 여)·오계춘(22, 여) 등 일 가족 3명은 산에서 피신생활하다 붙잡혀 한림국민학교로 끌려 갔다 한림리 물왓에서 총살됨 (한림리–학살터–물왓, 참조) 3월 4일: 김무생(75, 여)과 김신길(29, 여)·김신길의 자녀(3개월) 등 3명 이 토벌대에 발각돼 명월리 빌레못 인근에서 총살됨 소개 직후 토벌대는 집집마다 불을 질러 고려시대 이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 던 마을 집들을 초토화시켰다. 소개지에서의 생활은 더 힘들었다. 명월 주민들은 소개지에서 무장대가 해안마 을을 습격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마다 수난을 당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1948 년 12월 3일 무장대의 금릉리 습격과 1949년 1월 3일 협재리 습격으로, 이 사건 이 발생한 다음 날 많은 주민들이 한림국민학교에 끌려갔다가 인근에서 학살됐 다. 그 주요 사건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48년 12월 9일: 고인군(29, 남)을 비롯한 5명이 한림국민학교로 연행됐다가 이 날 대림리 봉근굴에서 총살됨 (대림리–학살터–봉근굴, 참조) 1949년 1월 12일: 강영아(19, 남)를 비롯한 12명이 1월 3일 협재리가 무장대에게 습격을 받은 뒤 한림국민학교로 연행됐다가 이날 동명리 신겡 이서들에서 총살됨 (동명리–학살터–신겡이서들, 참조) 1월 16일: 오승규(64, 남) 일가족 4명이 한림지서로 연행된 뒤 동명리 신 겡이서들에서 총살됨 이외에도 명월리 주민들은 1~2명씩 계속 학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