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5page

1127 한림면 에 돌아왔어요. 그런데 하루는 학교로 나오라고 해요. 각 마을에 대기병들이 있었는데 대기병 모두 그날은 학교로 나오라는 거예요. 가서 보니까 이미 국민학교 후문으로 해 서 미모루동산을 지나 총살현장으로 가고 있었어요. 우는소리가 들리고 난리예요. 맨 앞에는 사형자들이고, 그 다음은 경찰, 그 다음은 학도연맹원, 맨 뒤에는 군인들이 차례 로 가는 거예요. 지금 동명회관 있는 그 부근이었어요. 신겡이서들이라고. 당시 그곳에 는 아이들 무덤이나 애매한 사람들이 묻혀 있었어요. 거기서 총살한 거죠. 내가 목격한 날 열네 사람을 죽였어요. 학도연맹원들이 밭담에서 망을 보고, 사형자 들은 밭담을 따라 일렬횡대로 꿇어 앉혔어요. 사격거리는 멀지 않았죠. 대충 15m 정도 거리에 경찰 6명과 군인 2개 분대 병력이 서서 발포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쏜 다음 어떻게 한 줄 알아요. 학도연맹원들에게 죽창으로 찌르라 는 거예요. 그리고 맨 나중에… 우리 보고 삽으로 묻으라고 해요. 비가 온 뒤라 땅은 축 축했어요. 우린 까마귀가 시체 눈을 안 빼먹을 정도만 덮었죠. 다 덮을 수가 없었어요. (문) 거기에 있던 군인들은 얼마나 됐습니까? (답) 군인이 2개 분대 정도. 순경이 여서 일곱명. 또 학도호국단원이 15명 있었고, 우 리 지단 연락병도 15명이나 됐어요. 군인들이 먼저 가자 우리와 순경 한 명만 남아서 뒷처리를 했어요. (문) 사람들은 묶여 있었습니까? (답) 그날은 묶지 않고 자유롭게 가고 있었어요. 그때 처녀가 여덟 명이고, 남자 여섯 명 해서 모두 열네 명이었을 거예요. 명월 오매춘 하면 당시 유명했는데 오매춘과 오매 춘 부모들이 이날 죽었다는 거예요.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에 앉았는데 돌아앉으 라고 해서 할아버지에게 빨간 보자기를 씌웠어요. (문) 어린아이도 있었습니까? (답) 그 때 어린아이는 없었을 거예요. (문) 오매춘과 그 부모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답) 영장을 묻고 나온 뒷날 오매춘이 부모가 죽었다고 소문이 났어요. 1 그 나머지는 몰라요. 어느 동네인지도 몰라요. 1) 오매춘의 부모 이름은 오찬규(68세)와 홍계출(57세)로 1948년 음력 12월 18일 희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