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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제주4·3유적 Ⅰ_ 제주시편 민들 모두 집합하라고 해서 나갔더니 9명을 뽑아갔다. 이유는 양민증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들은 1948년 음력 12월 11일, 도령마루로 끌려가 총살당했다. 8. 김규백(남, 연동, 1926년생) 우리 마을에서 형님이 돌아가신 것이 제일 첫 희생이다. 음력 10월 2일이 제사 다. 그때 비월동에서 형님 김규만, 오동현, 고재중 3명이 죽었다. 고재중은 우리 보다 나이가 어리고, 오동현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아마 30세 미만이었을 것 이다. 그날 박창률도 잡혀가서 도령마루에서 총살당했다. 박창률은 천식이 있어 서 기침을 자주 했다. 보릿대 속에 숨었는데, 기침 때문에 걸려서 죽었다. 희생자 들은 모두 군인에게 희생된 것이다. 군인들이 일부러 사람을 잡아가려고 잠복했 다가 날이 밝자마자 새벽 6시쯤 포위해 들어와서 사람들을 죽였다. 이때는 집을 태우지는 않았다. 이 사건 후로, 주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나도 그날부터 집에서 살지 않았다. 위보다 아래쪽이 더 무서웠다. 현재 확인된 도령마루 희생자는 모두 76명이다. 다. 현황 현재 이곳은 제주국제공항과 신제주를 잇는 공항로가 여러 차례에 걸쳐 확장되 면서 옛 모습을 많이 상실했다. 도령마루 정상에 있던 소나무동산도 신제주로 가는 직선도로가 뚫리면서 둘로 나뉘었다. 당시 이 동산을 중심으로 여러 곳에서 주민들 이 학살됐다. 증언에 따르면 그중 동산 서북쪽 맞은편 소나무밭이 주 학살지였다. 2018년 4월, 이곳에 제주작가회의와 탐라미술인협회에서 표지목을 설치했다. 4·3역사의 조난지 도령마루 이곳은 제주4·3의 역사는 물론 원래 지명조차 조난당한 도령마루이다. 더욱이 제주의 관문 공항 인근에 있으면서도 소나무 숲에 가려져 고립무원의 지대로 방 치되어 왔다. 이곳이 4·3 당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은 일찍이 현기영의 소설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