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page
114 제주4·3유적 Ⅱ _ 서귀포시편 산으로 도피한 청년들을 찾으러 나섰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비극이 닥쳤다. 이들 은 당시 산간에서 작전 중이던 군토벌대에 쌀오름 인근에서 붙잡혀 19명이 총살 됐다. 입산 가족을 데려오기 위해 나섰던 주민들이 토벌대에 학살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주민 오일화는, “일주도로에서 소나무 제거작업을 하는데 비석거리 쪽으로 제무시(GMC) 두 대가 올라갔어. 서귀포에서 망원경으 로 쌀오름을 보니까 딱 사람들이 보이거든. 그렇게 차가 올라갔는데 몇 분 안 돼 서 총소리가 팡팡 나더라고. 한 사람만 살았지”라고 증언했다. 그 후 군인과 경찰응원대로 구성된 합동토벌대가 연일 토평리에 들이닥쳤다. 토 평국민학교는 도피자 가족 수용소로 변했다. 토벌대도 수용소를 지키려 토평국민 학교에 주둔했다. 당시 이러저러한 이유로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없는 주민은 도 피자 가족으로 분류돼 수용됐다. 이들 중 상당수는 1948년 12월 16일 무장대의 토평리 습격 직후 토벌대의 보복으로 또다시 처형되는 비극을 맞았다. 토평리의 주요사건은 다음과 같다. 1948년 11월 7일: 무장대가 서귀리 습격 후 퇴각하며 오임길(38, 남)과 부인, 후 처를 끌고가 살해함 11월 12~13일: 토벌대가 이춘방(37, 남)·두선(27, 남) 형제와 고경순(24), 김희 운(22), 송경선(23), 오봉중(34), 오영평(24) 등 청년 7명을 비 석거리에서 총살함 11월 15일: 경찰이 도피자 가족에게 산으로 간 가족들을 찾아오라며 압박 하자 산에 갔다 군인들에게 강월계(44, 여) 등 17명1 이 모시모 루에서 총살됨 (아래 학살터-모시모루, 참조) 12월 16일: 무장대가 토평리를 습격해 오유문(44, 남)과 오언신(32, 남)을 살해함. 토벌대는 이에 즉각 보복에 나서 토평국교에 수용됐던 고경화(60, 여)를 비롯한 7명을 벌내물에서 총살함 (아래 학살 1) 이날 학살상황을 종합하면, 도피자 가족 20명이 자신의 가족을 찾으러 쌀오름 근처로 갔다 군토벌 대에 발각돼 1명을 제외한 19명이 학살되는데 이 17명의 희생자수는 유족들이 신고한 ‘4·3희생자 신고서’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이 숫자는 마을지의 16명과 증언의 19명 희생자수와도 1~2명 차이 가 있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