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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2025년 4월 순국 Inside  길 따라 얼 따라 순국 역사기행 ② 데라우치, 대한제국의 국새를 탈 취하고 조선총독이 되다 데라우치는 1910년 5월 20일 에 임명을 받고 7월 23일에 이른 바 ‘한일합병’ 조약문을 가지고 7 월 23일에 부임하였다. 그러므로 실제 통감은 1개월 남짓한 기간이 다. 8월 16일에 매국노 이완용과 농상공대신 조준용을 불러 한일 합병을 모의했다. 그리고 이완용 을 중심으로 22일에 어전회의를 열어 승인 절차를 거쳤다. 대한제국이 운명하던 날, 그 마 지막 날을 지키고자 한 인물이 있 었다. 바로 순정효황후(純正孝皇 后)이다. 순정효황후 윤씨는 융희 효황제(순종)의 부인이다. 순정효 황후는 1910년 융희효황제가 한 일병합조약의 날인을 강요당하 자, 국새를 자신의 치마 속에 감추 고 내주지 않았다. 국권을 지키겠 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국새는 백부 윤덕영이 강제로 빼 앗아 날인을 하고 데라우치에게 바쳤다. 이렇게 하여 대한제국은 역사 에서 지워졌다. 그리고 대한제국 은 일본제국의 한 가문이 되었다. 이른바 ‘이왕가(李王家)’이다. 그 나마 일본에서는 이왕가를 다른 무가(武家) 출신의 일본 가문들과 구분하여 왕공족으로 우대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이왕 가는 경술국치로 일제로부터 받 았던 많은 재물을 받아 호사를 누 렸다고 한다. 데라우치는 ‘한일합병’(경술 국 치)을 강제로 성사시키고 난 뒤, 축하연회장에서 자신을 가토 기 요마사[加 籐 淸正], 이토 히로부 미 등과 비교했다고 한다. 가토 나 이토는 조선을 침략했을 뿐이 고 식민지화 하는 데는 실패했지 만, 데라우치 자신은 성공했다는 것이다. 데라우치 마사다케는 한 국통감에서 초대 조선총독으로 되었다. 기억해야 할 또 한 사람의 인물, 정무총감 야마가타 이사부로 우리에게 ‘경술국치’라는 역사 적 치욕을 안긴 또 한 사람의 일본 인을 기억해 두자. 데라우치의 조 선총독 부임과 함께 그림자처럼 ➐ ➑➏ ➏  정한론의 본산이었던 쇼카손주쿠 문하생 명단. 가운데의 야마가타 아리도모 이름 바로 옆에 이토 히로부미 이름이 적혀있다. 이들 이 일본 근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➐  한국통감부 부통감 · 조선총독부 초대 정무총감을 지낸 야마가타 이사부로(위키피디아 제공) ➑  일본의 대한제국 병합문서(「倂合詔勅」)를 읽고 있는 ‘쌍육판’의 데라우치 마사다케(가운데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