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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0 제주4·3유적 Ⅰ _ 제주시편 중 서청특별중대가 주둔하고 있던 한림국민학교에 끌려가 학살된 사람은 다음과 같다. 1948년 12월 9일: 양한진(20, 남)은 12월 8일 경찰에 연행됐다가 이날 대림리 봉 근굴에서 총살됨 12월 11일: 양무경(31, 남)과 조창석(23, 남), 조창규(20, 남, 조창석 동생) 등 3명은 한림국민학교로 잡혀간 뒤 대림리 봉근굴에서 총살됨 (대림리–학살터–봉근굴, 참조) 12월 14일: 고남수(28, 남, 이명 고남현)는 한림지서로 연행됐다 귀덕국민 학교 근처에서 총살됨 12월 23일: 한림면사무소 직원이었던 양만춘(32, 남)과 양문제(28, 남, 양 만춘 동생) 2명은 12월 22일 한림국민학교로 연행됐다 동명리 신겡이서들에서 총살됨 (동명리–학살터–신겡이서들, 참조) 1949년 1월 12일: 양만표(26, 남)를 비롯해 양시훈(21, 남), 진승택(24, 남), 오영 수(31, 남) 4명은 한림국민학교로 연행됐다 1월 12일 동명리 신겡이서들에서 총살됨 당시 학살은 한림국민학교 주변인 까마귀빌레, 미모루, 물왓, 신겡이서들, 한림 옛 오일장터, 수원국민학교 인근 봉근굴 등지에서 다른 소개민들과 같이 이루어졌 다. 그러나 증언과 자료가 부족해 이에 대한 정확한 진실규명은 어려운 실정이다. 한편 무장대가 협재를 습격하자 남문동에 2차 소개령이 내려졌다. 1차 소개령 당시 문수동이나 한천동, 거전동을 토벌대가 완전히 불태운 것과는 달리 남문동 은 소각시키지 않았었다. 이때 명월 하동에도 소개령이 내려졌는데 명월하동에 소개했던 명월 중상동 주민들과 남문동에 소개했던 동명 주민들 대다수는 그 후 옹포 통조림공장으로 옮겨 집단생활을 했다. 마을 복구는 1949년께 이루어져 문수동과 한천동, 남문동에 별도의 성이 쌓아 졌다. 당시 남문동은 1차 축성 때 한림면장과 지서주임의 비현실적인 지시에 따 라 성을 쌓다보니 민가의 2/3가 성 밖에 위치하게 되자 마을 대표가 도지사에게 호소하여 2차로 민가 모두를 두르는 성을 쌓는 희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때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