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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역사기행 ➋ • 한국통감과 조선총독의 일본 현장을 가다 ④ 111 거쳐 1900년 4월 25일 일본군 육 군참모차장, 1901년 제1차 가쓰 라 타로[桂太郞] 내각의 육군대신 이 되어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 었다. 여러 공로로 자작이 되었 고, 대장 승진, 남만주(南滿洲) 철 도회사 설립위원장을 거쳐 1908 년 7월 14일 육군대신에 임명된 뒤 외무대신을 1개월간 겸직했다. 일본 정계에서도 실력을 인정 받 았던 인물이다. 그 뒤 한국통감 재임시에 대한 제국 병합(경술국치)을 성사시키 고 초대 조선총독이 되었다. 통감 과 총독을 역임한 유일한 인물이 다. 1916년 조선총독을 마치고 10월에 18대 내각 총리대신이 되 었다. 그 뒤로도 대장성(大藏省)과 외무성 대신을 겸임하면서 팽창 주의적 대외 정책을 폈고,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영일 동맹을 체 결하면서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 고, 독일 점령지였던 산둥[山東]반 도 일대와 태평양의 섬들을 차지 하였다. 또한 시베리아 출병을 감 행하여 한국과 중국에서 일본의 권익 확대를 꾀했던 인물이다. 최 종 작위는 백작. 그의 가문은 일본의 명문으로 장남 데라우치 히사이치[寺內壽 一]는 미국과의 태평양전쟁에서 일제의 남방군 최고사령관을 역 임하였다. 패전후 말레이지아에 서 병사하였다. 백작 작위를 계승 하였으며 부자가 육군원수를 역 임한 특이한 경우라고 묘지 안내 문에도 기록하였다. 부자의 묘는 야마구치 현립(縣立)대학 뒤편의 야산에 있다. 이와 같이 조선의 총독은 일본 내에서도 원수나 총리대신에 이 를 정도의 군사, 정치적 실력자들 이 임명되었다. 일본 제국 내에서 식민지 조선의 위치가 만만치 않 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 으로 총독들의 면면을 보면, 일본 에 대한 애국심이 강할수록 식민 지에서의 수탈은 더욱 극심하였 다. 데라우치의 식민지 정책은 헌 병경찰제로 알려진 무단정치였 다. 제국주의시대 당시, 국가간의 생존경쟁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 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 양 면성에는 큰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다. ➍  데라우치 마사다케의 향리에 있는 묘  ➎  데라우치 부자 묘지의 설명문 ➍ ➎